brunch

브런치스토리 한상림 시인의 '빈 집'을 청람 평하다

브런치스토리 작가 한상림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빈 집


시인 한상림





저녁 찬거리로 국내산 우렁이살 한 팩을 샀다 팔순 노모의 젖꼭지 닮은 꼬득꼬득한 알맹이를 바락바락 문질러 된장에 버무린다 뚝배기에서 팔팔 끓이는 우렁이 된장조림, 알맹이 한 알 잘근잘근 씹어본다 뭉툭 잘린 몸통이 씹힐 때마다 수렁 속을 더듬었을 촉수, 단단한 껍질에 새긴 나선탑, 느릿느릿 기어 왔을 진흙길, "내 살을 먹고 어서
자라거라." 부화하는 순간까지 어미를 뜯어먹는 우렁이들, 집 떠나는 새끼를 위해 바람 삭이며 바라보는 어미의 빈집, 평생 논밭에 엎드려 육 남매 키운 어머니의 집, 보내 주신 무농약 쌈채에 넣어 먹는 우렁이 저녁 만찬, 울컥 슬픔 한 덩이가 씹힌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_
브런치스토리 한상림 작가는

깊은 감수성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독자들에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중견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사물이나 상황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감정들을 꺼내 보여주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이 시에서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들을 풀어내어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더 큰 철학적 질문들을 던지며, 인간의 본질적 갈등과 삶의 굴곡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시 속에서는 작가의 삶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며, 이는 결국 인생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저녁 찬거리로 국내산 우렁이살 한 팩을 샀다"
첫 번째 행에서 시인은 일상적인 소재인 "저녁 찬거리"로 시를 시작한다. 이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일상의 반복과 습관을 담고 있다. 저녁 찬거리를 마련하는 행위는 삶을 지속하기 위한 기본적인 행위이며, 이는 생존을 상징하기도 한다. "국내산 우렁이살"이라는 구체적인 소재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이후 시에서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하게 된다.

"팔순 노모의 젖꼭지 닮은 꼬득꼬득한 알맹이를 바락바락 문질러 된장에 버무린다"
두 번째 행에서는 우렁이의 알맹이가 "팔순 노모의 젖꼭지"와 비유된다. 이 표현은 어머니의 모성애와 희생을 상징하며, 노모의 삶과 연관된 육체적, 정신적 희생을 암시한다. 알맹이를 문질러 된장에 버무리는 행위는 어머니의 손길을 닮은 듯한 모습으로, 작가가 어머니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이 행은 단순한 음식 준비를 넘어, 어머니와의 정서적 교감을 나타낸다.

"뚝배기에서 팔팔 끓이는 우렁이 된장조림, 알맹이 한 알 잘근잘근 씹어본다"
세 번째 행은 요리의 과정을 묘사하면서, 구체적인 촉각적 경험을 통해 생생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뚝배기에서 팔팔 끓이는" 장면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의 흐름과 정성을 담고 있다. "알맹이 한 알 잘근잘근 씹어본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음식 섭취가 아닌, 그 속에 담긴 감정과 기억을 곱씹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하며, 작가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를 담고 있다.
"뭉툭 잘린 몸통이 씹힐 때마다 수렁 속을 더듬었을 촉수, 단단한 껍질에 새긴 나선탑"
네 번째 행은 우렁이의 몸통이 씹힐 때마다 느껴지는 촉각적 이미지를 통해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 "수렁 속을 더듬었을 촉수"는 우렁이의 생존 본능과 그 과정에서의 고난을 상징하며, "단단한 껍질에 새긴 나선탑"은 시간과 경험의 축적을 나타낸다. 이는 어머니의 인생, 특히 험난했던 시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우렁이의 삶과 어머니의 삶을 연결 짓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느릿느릿 기어 왔을 진흙길, '내 살을 먹고 어서 자라거라.' "
다섯 번째 행은 우렁이가 지나온 길을 묘사하며, 이 길은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상징한다. 우렁이의 생존을 위해 그들의 어미가 희생하는 모습은 어머니의 헌신과 연결된다. "내 살을 먹고 어서 자라거라"라는 문장은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을 대변하며,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구절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화하는 순간까지 어미를 뜯어먹는 우렁이들, 집 떠나는 새끼를 위해 바람 삭이며 바라보는 어미의 빈집"
여섯 번째 행은 우렁이들이 부화하는 순간까지 어미를 뜯어먹는다는 강렬한 이미지로 시작된다. 이는 생명의 순환과 동시에 어머니의 희생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집 떠나는 새끼를 위해 바람 삭이며 바라보는 어미의 빈집"은 어머니의 상실과 허전함을 상징하며, 자식들이 떠난 후 남겨진 빈집은 곧 어머니 자신의 내면적 빈곤을 나타낸다. 이 부분은 생명과 죽음, 그리고 떠남과 남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평생 논밭에 엎드려 육 남매 키운 어머니의 집"
이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그 속에 담긴 고된 노동과 희생을 담고 있다. 어머니는 평생을 논밭에서 일하며 자식을 키웠고, 그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어머니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상징적 장소로 그려진다. 이는 작가가 어머니를 회상하며 느끼는 감정의 깊이를 나타내는 중요한 행이다.

"보내 주신 무농약 쌈채에 넣어 먹는 우렁이 저녁 만찬, 울컥 슬픔 한 덩이가 씹힌다"
마지막 행은 저녁 만찬의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면서, 그 안에 담긴 감정의 폭발을 드러낸다. "무농약 쌈채"는 어머니의 정성과 자연스러움을 상징하며, 이를 먹으면서 느껴지는 슬픔은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작가의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울컥 슬픔 한 덩이가 씹힌다"는 감정이 물리적으로 체험되는 순간을 보여주며, 시의 클라이맥스로 작용한다.

이 시는 한상림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은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의 생명과 죽음, 희생과 사랑을 동시에 조명한다.
시의 전체적인 흐름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과 그로 인한 작가의 감정적 반응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이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시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미지의 사용이다. 작가는 우렁이의 알맹이, 촉수, 껍질 등의 이미지를 통해 어머니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더 깊은 감정적 공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시의 리듬과 반복적인 구조는 어머니의 삶과 희생, 그리고 작가의 감정을 강조하며, 시의 감성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요컨대, 이 시는 한상림 시인의 독특한 감수성과 섬세한 표현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소재를 통해 더 큰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갈등을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강한 여운을 남긴다.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순영 시인의 시 '아이 좋아라'를 청람 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