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중기 시인의 시 '가을 노래'를 청람 평하다

홍중기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홍중기 시인






가을의 노래





시인 홍중기






바람으로 흔들리는 나뭇잎은

임 떠나는 오솔길로 한 잎 두 잎

눈물 되어 떨어져요

뒤돌아 보면

당신은 분 바르고 뛰어 와

슬픔을 잊어버리려

가슴에 얼굴 묻고

그리운 빛깔로 풀어놓는

사랑의 모습

아름다운 얼굴이었어요

바람 불면

휘날려 멀어지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뿌려 놓고

떠나는 오솔길엔

가을비에 젖어 흔들리는

풀들의 몸짓은 슬퍼요



가을비에 젖어드는 슬픈 마음

임 헤어진 오솔길로

사랑 사랑 눈물 되어 떨어져요

뒤돌아 보면

당신은 아픈 가슴 남기고

떠나는 아쉬운 몸짓

빗방울로 흐르는

가을의 슬픔을 풀어놓는

사랑의 모습 아름다운 얼굴이었어요

바람 불면 휘날려 멀어지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심어 놓고 떠나는 오솔길엔

가을비에 젖어 흔들리는

풀들의 몸짓은 슬퍼요








홍중기 시인의 '가을의 노래 '

― 이별을 머금은 자연의 윤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홍중기 시인의 <가을의 노래>는 사랑의 종결을 다루면서도 파열이나 단절의 언어를 선택하지 않는다. 이별은 고통이지만 파국이 아니며, 슬픔은 절망이 아니라 계절처럼 스며드는 삶의 흐름으로 제시된다. 이는 홍중기 시인이 일관되게 견지해 온 삶의 가치철학, 곧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품어 안으려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그의 시에서 사랑은 끝나도 사라지지 않으며, 이별은 상처로 남되 의미를 잃지 않는다.


이 시의 정조는 ‘떠남’에 있다. 그러나 그 떠남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흔적을 남기는 이별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가을비에 젖은 풀들의 몸짓은 모두 떠난 이후에도 지속되는 감정의 잔상이다. 홍중기 시인은 사랑의 종언을 말하면서도, 그 사랑이 남긴 결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또렷해지는 사랑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한다.


‘임 떠나는 오솔길’은 이 시에서 핵심적인 공간이다. 오솔길은 넓지 않고 요란하지 않다. 그러나 사랑이 오고 가며 가장 많은 감정이 스며든 자리다. 시인은 이별의 장면을 극적인 서사로 확대하지 않는다. 대신 나뭇잎 한 장, 풀의 흔들림 같은 소소한 자연의 움직임에 감정을 내려놓는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품 미의식, 즉 과장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감정을 바라보려는 시적 절제를 잘 보여준다.


홍중기 시인의 사랑은 언제나 그리움 이후에 자리한다. 분을 바르고 뛰어오는 모습, 가슴에 얼굴을 묻는 장면은 이별을 되돌리려는 몸짓이 아니라, 이별을 받아들이기 직전의 마지막 온기다. 이 장면에서 사랑은 격렬함보다 애잔함으로 표현되며, 그로 인해 시는 감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고, 언어는 담담하다. 그러나 바로 그 담담함이 슬픔의 깊이를 더한다.


가을비와 바람은 이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다. 이는 단순한 계절 장치가 아니라, 홍중기 시인의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사랑은 머물지 않고 흩어지며, 기억은 젖어들고, 감정은 흔들리면서 지속된다. 시인은 이별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견디며 함께 살아가야 할 삶의 한 질서로 받아들인다. 이 지점에서 그의 시는 위로보다 공감을 택한다.


홍중기 시인의 시적 윤리는 분명하다. 사랑은 끝나도 헛되지 않으며, 이별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기억으로 남는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가을의 노래>는 슬프되 무너지지 않고, 애잔하되 절망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 서로 닮아가는 이 시의 공간에서, 독자는 자신의 이별 또한 삶의 한 계절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시는 조용히 묻는다.

사랑이 떠난 뒤에도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홍중기 시인은 그 대답을 바람과 비, 그리고 가을비에 젖어 흔들리는 풀들의 몸짓으로 차분히 보여준다.

그의 시가 오래 남는 이유는, 슬픔을 말하면서도 삶의 리듬을 끝내 놓지 않기 때문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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