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재 작가의 수필 '거울 속의 아버지'를 청람 평하다
신우재 작가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3. 2024
■
거울 속의 아버지
수필가 신우재
내 기억 속에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입력이 안 되어 있다. 아버지는 웃을 일이 별로 없던 분이었다. 몰락한 양반집안의 맏아들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가계를 책임진 가장이 되었다. 위로 세 어른과 밑으로 세 동생을 돌봐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 식솔들을 이끌고 아버지는 태평양전쟁과 6.25 전쟁을 겪으며 세파를 헤쳐 나가야 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잔정을 표시하는 일도 없었고, 긴 이야기를 하신 적도 없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놀이 비슷한 것을 해 본 적도 없다. 아버지와 자리를 함께하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무렵의 공무원은 기아선상의 봉급을 받았다. 곧고 고집스러운 아버지는 봉급 이외에 돈을 만드는 재주가 없었다. 아버지의 월급봉투는 가불한 것을 빼면 남는 것이 없었다. 집안은 늘 가난했고, 학교 수업료를 제때에 낸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가난이 싫었고, 가난할 수밖에 없는 봉급을 주는 공무원이란 직업을 업신여겼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나는 자라서 아버지처럼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반면교사였다. 나는 아버지처럼 문학도 예술도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식들에게 무뚝뚝한 아버지가 되지도 않을 것이며, 몸도 약골인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고리타분하고 쥐꼬리 월급을 주는 공무원은 더더욱 할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 상급반이 되면서 진학문제가 나왔을 때 아버지는 법과대학 진학을 권하셨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고집했다. 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공무원이 되는 것 못지않게 따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도 젊었을 때 일본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는 의외의 고백을 하시면서 내 고집을 받아들여 주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한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다녀와서 신문기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계급정년으로 조기 은퇴를 하셨다. 공무원 출신이 살기에 세상은 너무 험했다.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손대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사기를 당해 돈을 떼인 적도 있다. 그 무렵 세상을 조금 알게 된 나는 아버지에게 깊은 연민의 정 같은 것을 느꼈다. 신문기자의 월급봉투도 공무원 못지않게 얇았다. 나는 이 봉투로 식솔食率
들을 부양하는 책임을 떠맡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신문기자로 출입하던 태평로 국회의사당과 중앙청은 모두 아버지가 직장생활을 하시던 곳이었다.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던 나는 아버지가 일하시던 건물에 공무원이 아닌 신문기자로 드나들게 된 것이다.
유신시절 언론 탄압은 극심했다. 나는 별 미련 없이 언론계를 떠났다. 여러 해 동안 이 직장 저 직장 옮겨 다니다 결국 다시 방송사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생활이 안정이 좀 되는가 싶었는데, 사장이 장관으로 가시면서 비서관으로 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나는 거듭거듭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결코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주위의 강력한 권유로 등을 떠밀려 장관을 따라갔다. 계속 공무원이 되지 않겠다고 버티었지만 장관은 나를 공보국장으로 발령을 냈다. 얼떨결에 공무원이 된 것이다. 나는 쓴 약을 마신 기분이었지만 아버지는 기뻐하시면서 아들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그렇게 시작한 공무원을 50대 중반까지 하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아버지가 은퇴한 나이와 거의 비슷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거울 속에 반백의 머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은 노경의 아버지 모습과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했던 나는 결국 아버지가 밟은 길을 걸어왔고, 이제는 모습까지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_
이 글은 신우재 작가의 수필로, 아버지와의 관계, 자아 성찰, 그리고 인생의 역설적인 흐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글의 중심에는 작가의 아버지가 놓여 있으며, 아버지의 삶과 그 삶을 바라보는 작가 자신의 시선이 정교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서술은 단순한 회고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 글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한 세대가 겪어야 했던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의 고뇌와 고통,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내적 갈등을 통해 조망하고 있다.
아버지의 몰락한 양반 가문, 조기 가장으로서의 책임, 전쟁과 가난 속에서의 고단한 삶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많은 이들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버지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묘사되며, 웃음도, 감정도 사치奢侈일 수밖에 없는 삶의 무게가 그를 지배한다.
이러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어린 시절에는 불만과 반항으로 가득했다. 그는 아버지의 가난, 직업, 그리고 삶의 방식에 반감을 품으며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걸으려 했다.
이러한 반항의 이면에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작가는 아버지를 反面敎師로 삼아 자신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철학을 공부하고 문학과 예술을 추구하며, 아버지처럼 공무원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은 그가 추구하는 독립적인 자아의 상징이었다.
삶의 아이러니는 이 모든 결심에도 결국 작가가 아버지의 길을 걷게 만든다. 작가는 신문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공무원이 되고 만다.
그는 이를 ‘쓴 약을 마신 기분’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의 흐름에 휘말려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에 굴복하게 되는 고전적 비극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이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다. 이는 단순한 외모의 변화에 대한 묘사를 넘어, 인생의 순환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작가는 아버지를 닮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고, 외형적으로도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해도 결국에는 운명의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존재론적 숙명론을 상기시킨다.
이 글에서 드러나는 주제는 매우 명확하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삶을 설계하려고 하지만, 역사의 흐름, 사회적 조건, 그리고 본질적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동시에 그 선택이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신우재 작가 역시 자신의 삶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이 결국 아버지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모습은 실존적 고민을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이 글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그와의 관계가 불편했다고 고백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되고, 그 연민은 자신과 아버지가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더 깊어진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단순히 감정적인 교류를 넘어, 삶의 軌跡을 공유하게 되는 숙명적 관계임을 보여준다.
특히 아버지의 철학 공부에 대한 고백은 아버지가 단순히 무뚝뚝하고 감정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이상을 품었던 사람임을 알게 해 준다. 이는 아버지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며, 결국 아버지와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글은 문학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는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삶을 조용히 성찰하고 있다.
또한 작가의 삶 속에서 철학적 사유와 실존적 고민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방식은 독자로 인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한 회고담을 넘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글은 사색적 깊이와 문학적 아름다움이 결합된 秀作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신우재 작가의 이 수필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삶, 운명,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이 아버지의 삶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속에서 인간의 숙명적인 본질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글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철학적, 문학적 작품이다.
■
신우재 작가
1943. 서울특별시 출생
1965~1970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 석사
|1961~1965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
1958~1961 경복고등학교
경력사항
컨벡스코리아 상임고문
2002 경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1998.9~2001 건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
1997.8~1998.2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1996.7~1997.8 한국언론연구원 원장
1988~1996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실 공보비서관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