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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름은 사랑

청람 김왕식








어머니의 이름은 사랑



김왕식



아직 밤의 그림자가 걷히기 전
어머니는 허리 굽혀 깨어나셨다
손바닥에 남은 거친 땅의 기억들
손수 짠 헐렁한 옷자락에
한평생의 흙내음이 스며 있었다

땀에 젖은 흙 속에서
작은 씨앗들이 자라듯
어머니의 마음도 그곳에 뿌리내렸다
새벽이슬 맞으며 손끝으로 따낸 고추들
굽어진 허리, 펴지 못한 채
끝없이 밭을 어루만지셨다

해가 오르기 전,
어머니는 무거운 고추 짐을 이고
십리 길을 구불구불 걷고 또 걸었다
먼지와 돌멩이가 발목을 감싸고
어두운 산길, 깊은 고요 속을
어머니는 장터로 향하셨다
그 길 위에서 피어오른 수많은 생각들
혼자서만 알던 이야기들

장터에 닿으면,
어머니는 고추 한 자루를 내놓고
구겨진 지전 몇 개를 손에 쥐셨다
그 땀내 전 지전으로는 자식들 입을 옷과
하루의 허기를 채우는 양식을
가슴속엔 자식들에 대한 기도로 가득했다
저녁노을이 지는 그때까지
장터에 서서 고추 몇 줌을 떨이로 넘기고
웃음 속에 감춘 피로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숨기셨다

어두운 밤이 찾아와도
어머니는 다시 십리 길을 걸었다
힘겹게 뻗은 발걸음,
굽은 허리와 저린 다리에도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의 자식들만을 생각하며

어머니는 그렇게
땅과 하늘 사이에서
자신을 던지셨다
땀과 눈물로 자식들을 키우고
굽은 허리는 펴지 못했어도
그 속에 사랑을 가득 채우셨다

이제 나는 그 어머니를 기억한다
새벽녘 고추를 이고
십리 길을 걸었던
그 무거운 발걸음을 기억한다
밭에서 굽은 허리로 일하시던
어머니의 손길을 기억한다
그 손길이, 그 발걸음이
지금의 나를 일구었다

어머니여, 당신의 이름은 사랑이었다
당신이 남긴 그 길 위에
흘린 눈물들이
다시 사랑이 되어 흘러가고 있다
굽은 허리로 일구었던 당신의 날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나는 이제사 깨닫는다

이제 당신은 별이 되었지만
그 별빛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다
어머니여, 당신의 긴 여정 속에
숨겨진 눈물과 사랑이
영원히 내 마음에 머물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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