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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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숲의 서사
김왕식
태양이 눈을 감은 뒤,
어둠은 천천히 펼쳐지는 필름처럼
숲을 감싼다.
그 안에서 숨어있던 생명들이
조용히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끼는 반짝이는 파편들처럼
땅 위에 깔려 있고,
나무들은 서늘한 숨결로
몸을 비틀며 대화를 나눈다.
그들만의 느린 춤이 시작된 것처럼.
새벽이 오면,
달팽이들은 밤의 흔적을 따라
자신만의 길을 만들며
별빛을 등진 채
땅속으로 깊숙이 내려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조용히 꽃이 된다.
단순한 꽃이 아니다.
흙 속의 숨겨진 에너지를 빨아들여
잎이 아닌, 달빛을 담은 꽃잎으로
천천히 피어난다.
그들의 몸은 은은한 빛으로 채워지고
밤의 기억을 간직한 채 자라난다.
흙 아래에선
곤충들이 마치 비밀 코드를 주고받듯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바위틈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물방울들이
서로를 조용히 어루만지며
작은 연못을 만든다.
이곳에서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어느새, 땅속에 묻힌 꽃들은
작고 반짝이는 씨앗으로 변한다.
그 씨앗들은 나무의 품에 안기고,
밤하늘로 흩어져 별이 된다.
단순한 별이 아니다.
그 별들은 숲의 숨결을 담고,
밤하늘을 수놓으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희미한 빛을 내뿜는다.
이 작은 숲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별의 탄생을 품고 있다.
그들은 말없이
영원히 자라나며,
우리가 듣지 못할 노래로
밤을 채운다.
숲 속에서 이어지는 이 순환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듯
끝없이 이어지고,
그 속에 담긴 감동은
매번 새롭게 피어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