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검객劍客은 검劍을 쓰지 않는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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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검객劍客은 검을 쓰지 않는다
청람 김왕식
"진정한 검객劍客은 검을 들지 않는다."
이 짧은 문장은 무림武林의 고수高手들이 추구하는 경지, 혹은 인간의 성숙한 내면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기라는 것은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지만, 진정한 고수에게 있어 검은 더 이상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그들의 경지는 검 자체를 넘어선, 마음의 평정과 내면의 깊이를 상징한다.
따라서 검을 들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외부의 적에 의해 자신이 흔들리지 않으며, 이미 내면의 적을 제압한 상태를 의미한다.
버드나무를 벤 결을 보고 검을 다루는 정도를 가늠한다는 구절은 고수들의 안목을 나타낸다. 버드나무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재질을 가진 나무로, 벤 결을 통해 사용된 검의 날카로움뿐 아니라, 사용자의 섬세함과 내면의 강도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버드나무를 베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검객의 기술과 정신적 수양이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나무를 가르는 그 순간, 검객의 모든 경험과 내공이 집중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버드나무를 벤 결을 보고 검을 다루는 능력을 가늠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을 넘어서, 그 검객의 인격과 수련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무에 남은 자국은 단순한 베인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고수의 내면세계와 그들이 쌓아온 시간의 축적을 나타내는 흔적이다.
진정한 고수는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혹은 이미 휘두른 후에조차 그들의 기운과 존재감이 남아있다.
그들이 지닌 검술은 외형적인 것이 아닌, 내면의 고요한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싸우지 않고도 싸우며, 이기지 않고도 이긴다.
이 경지는 우리가 흔히 무위無爲라고 부르는 개념과도 연결된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능력이 이미 내재화되어 더 이상 외부로 드러낼 필요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검을 들지 않는다는 것은 일견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것은 고수들이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완벽히 익혔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남용하지 않으며, 검을 휘두르는 일이 필수적이지 않은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검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지니게 된다. 바로 그들의 의지와 정신, 그리고 내면의 평화가 그들의 무기가 된다.
고수란 단순히 기술적인 능력의 숙련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고수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고, 상황을 판단하며, 필요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할 줄 안다.
그들은 불필요한 전투를 피하고, 진정으로 필요한 순간에만 검을 든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 그들의 내면은 이미 싸움을 초월한 상태에 있다.
버드나무를 베는 행위는 고수들이 수련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징적인 행위 중 하나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버드나무는 검객들에게 이상적인 연습 대상이 된다. 그 나무를 베기 위해서는 단순한 힘이 아닌, 기술과 정신적 집중이 요구된다. 이는 고수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힘보다 내면의 깊이를 더 중시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검을 들지 않는 진정한 고수란, 외부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의 내면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미 승리했으며, 더 이상 외부의 적과 싸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런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단순히 무림의 고수일뿐만 아니라, 인생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삶은 검술 그 자체를 넘어, 삶의 모든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된다.
결국, 진정한 검객이란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힘과 지혜를 통해 삶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그들은 검을 들지 않더라도 이미 검 이상의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이 남긴 자국은 단순한 베인 흔적이 아닌, 그들의 존재와 철학이 담긴 예술 작품과 같다. 이들이 진정한 고수인 이유는, 그들이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진정한 인간의 이상형일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