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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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시를 잘 쓰시나요
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시를 배우는 초심자들에게 흔히 보여주는 태도는 때로 지나치게 권위적이며, 시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열정을 꺾는 경우가 많다. 시를 배우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내면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려는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나 시의 정형적인 틀이나 형식적 기교에 매몰된 일부 지도자들은 이러한 초심자들에게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며, 창작의 자유를 억누른다.
시의 본질은 자유로움에 있다.
시는 개인의 내면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내는 예술 형식이다. 특정한 형식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목소리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시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일부 시 지도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시의 마술사라도 된 것처럼, 고정된 형식과 규칙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이를 따르지 않는 작품은 결코 훌륭한 시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이러한 태도는 초심자들에게 큰 장애물이 된다.
사실
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가르치는 방식은 과연 시의 본질에 부합하는가? 시를 정형화된 틀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는가? 시를 가르치는 이들은 시를 ‘잘 쓴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자신들만의 잣대로 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문학의 세계에서 '잘 쓴 시'에 대한 정의는 매우 모호할 수밖에 없다. 시를 평가하는 기준은 독자 개개인의 감상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시가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면 그 시는 훌륭한 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시의 형식이나 기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감정과 메시지이다.
따라서 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시의 마술사처럼 군림하며 초심자들을 지배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시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의 가치는 외형적인 요소나 기교에 있지 않으며, 시는 자유로운 표현의 장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시를 배우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시를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시 지도자들의 역할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과연 시를 잘 쓰는가?
시를 가르치는 이들이 스스로의 창작 활동을 통해 진정한 시의 가치를 체험하고, 그 가치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시의 가치와 초심자들의 시적 표현 사이에서 진정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가르침은 그저 형식적인 틀 속에 갇힌 시 교육에 불과할 것이다.
시를 지도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시의 본질을 이해하고, 시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것이다.
시는 형식이나 규칙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의 감정적 교감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시를 가르치는 이들은 초심자들이 이 점을 깨닫고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시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고, 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컨대, 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마치 시의 마술사처럼 군림하며 초심자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시는 자유롭고,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시의 가치는 독자의 감동과 교감 속에서 결정되며, 이는 형식이나 규칙으로 측정될 수 없는 것이다. 시를 가르치는 이들은 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본질을 존중하며, 초심자들이 자신만의 시적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나타내야 할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