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질척이는 시장통에서 찬밥을 삼켰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9. 2024
□
이글은
서울대 합격 체험 수기이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명문대를 가기 위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받는다.
사교육비가
결코
만만치 않다.
말한다.
'명문대 보내려고
기둥뿌리가 뽑혔다'고!
헌데
이 학생은 ㅡ?
감동적인 글이기에
공유한다.
■
어머니는 질척이는 시장 바닥에서
찬밥을 삼켰다.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 해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 사전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이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 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 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리며 '엄마~ 엄마~~ 나 합격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 동안 나를 꼭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동생인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고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 있었던 형의 뺨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댓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만에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 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시고 그저 색 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닌데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 일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 위로 올라가다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 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 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 거리다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 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돼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나도 꿈을 그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
이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내려가며, 그 안에 담긴 아픔과 희망의 이야기에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누군가의 삶이 이렇게까지 고단하고, 또 그 속에서도 이렇게 빛나는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글 속의 주인공은 가난과 장애라는 이중고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다. 이 험난한 현실 속에서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운동화가 해지고 가방 지퍼가 고장 나고, 옷이 색이 바랠 정도로 삶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그의 삶은 마치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한 송이 들꽃처럼 강렬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해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며 강의를 듣고,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쓴 채 열심히 공부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비관하거나 삶을 저주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에 특히 마음이 아팠다. 생선을 팔아가며 어렵게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질척이는 시장 바닥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던 그 어머니의 모습은 얼마나 가슴 아픈가.
이런 어머니의 고생을 보면서도 아들이 겪어야 했던 감정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머니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 모습에 다가가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그날의 눈물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날 밤 그는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히며 공부했다고 한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 이유 하나만으로 밤을 새워가며 공부할 수 있었다는 그 의지와 마음이 정말 대단하고도 아름답다.
또 하나, 형의 이야기는 나를 깊이 울렸다.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언어장애까지 겪고 있는 형이 동생을 위해, 어머니를 위해 리어카를 끌고 과일 상자를 나르며 집안 살림을 도왔다는 사실. 그 형을 보며 동생은 더욱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가난과 장애를 이겨내고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가족의 사랑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 통지서를 들고 시장으로 달려가 어머니의 지친 어깨를 안아드리며 함께 흘린 그 눈물은 얼마나 뜨겁고, 또 그 눈물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적셨을까.
이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과연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가?
처한 상황에서,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진심으로 노력해 왔는가? 어쩌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더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나니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 글은 큰 울림을 주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가짐과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꿈을 꾸는 자는 결국 그 꿈을 닮아간다'라고 앙드레 말로는 말했다.
이 글을 쓴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뒤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며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와 형을 모두 미국에 모시고 가서 함께 공부하며 가족들을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로 희망의 상징이다. 그가 겪은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끝없이 노력해 온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준다.
이 학생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준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