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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서리 사건

청람 김왕식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언제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한 여름날의 수박 서리 사건은

추억이 아닌

사건으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아픔이다.





그날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강렬한 햇빛이 내려쬐는 한낮, 마을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벌이기로 했다.


수박 서리.

여름 하면 떠오르는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

그 수박이 멀리 밭 한가운데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날의 더위와 열기로 인해 우리 마음도 한층 더 무모해졌던 것 같다.

우리는 저마다 작전 아닌 작전을 세우고, 한 사람은 망을 보고 나머지는 재빠르게 수박을 챙기기로 했다. 밭으로 가는 길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금기를 깨는 것만 같은 기분, 그 설렘과 긴장감이 우리를 한층 더 흥분시키고 있었다. 밭에 도착하자 녹색 덩굴들 사이로 탐스럽게 익은 수박들이 보였다.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어떤 수박을 고를지 고민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세상이 우리만을 위한 무대로 바뀌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우리는 가장 크고 잘 익어 보이는 수박 하나를 골라 신중하게 덩굴을 잘랐다. 손에 쥔 수박의 차가운 감촉이 전해질 때마다, 우리 눈빛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갑자기 "야, 거기서 뭐 하는 거야!" 하는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우리는 동시에 몸을 움츠렸다. 원두막에서 낮잠을 자던 아저씨가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순간, 공포감이 몰려왔다.

평소 무섭게 보였던 아저씨가 마치 거대한 산처럼 우리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다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들쭉날쭉한 밭길을 뛰면서도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는 우리를 향해 큰 소리로 혼을 내고 있었다.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우리들의 모습은 아마 그 자체로도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그때는 그저 무섭기만 했다.

결국 아저씨에게 붙잡히고 말았고,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머리를 숙인 채 아저씨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우리는 간곡하게 용서를 빌었지만

아저씨는 우리를 움켜잡고 부모님들께로 갔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우리 모두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얼굴로 서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짓을 하고 다니면 어쩌냐"라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속이 상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슴을 후벼 파고들었다.

결국, 아저씨는 변상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부모님들은 결국 수박 값을 지불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가 돈을 내는 그 손길이 얼마나 무거워 보였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머니께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어머니는 묵묵히 걸으셨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를 향한 실망과 걱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어머니는 항상 나를 위해 애쓰셨는데, 나는 철없고 무모한 장난으로 어머니를 더 힘들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어머니의 지친 얼굴이 떠올랐고, 마음 한구석이 너무도 아팠다. 아침이 밝아오자 나는 어머니께 다시 사과드리며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짓을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않고

꼭 안아주셨다.
시간이 흘러도 그때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나를 혼내셨던 엄한 목소리,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날의 사건은 어린 마음에 깊은 교훈을 남겼고,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


그 어머니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다.


어린 시절의 수박 서리 사건은 나에게 단순한 장난이 아닌, 깊은 반성과 성장의 시작점이 되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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