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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풍경

청람 김왕식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지하철로 귀가한다.


지하철 풍경을

두서없이

몇 줄 메모한다.









지하철 풍경






지하철 문이 열리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서로의 얼굴을 잠깐 스치고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저마다의 작은 사각형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곳에는 각자의 세상이 있다. 누구는 게임의 세계에서 전투를 벌이고, 누구는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흡사 각자의 우주에 갇혀 있는 듯, 사람들의 눈은 스마트폰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신문을 펼치고 중요한 사건들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두꺼운 책을 들고 진지하게 독서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지하철이란 공간을 일종의 '마음의 정거장'으로 여겼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지식을 쌓거나, 새로운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는 장소로 여겼던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신문을 읽는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책을 읽는 사람도, 간혹 한 둘 보일 뿐이다. 대신 사람들은 전자기기를 통해 시간을 보낸다.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책을 읽거나 기사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눈길은 책과는 거리가 먼 화면에 멈춘다. 웃음을 자아내는 짧은 영상, 중독성 강한 게임, 끊임없이 흘러가는 소셜 미디어의 타임라인.

그 모든 것은 짧고 강렬하다.

그 속엔 사색과 깊이가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하철 안의 이 같은 광경이 우리 삶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한정된 공간에 가두고, 그 공간 안에서 한정된 경험만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은 그 경험의 가장 손쉬운 도구일 뿐이다. 눈앞의 작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을 차단하고, 깊은 사유와 대화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가끔, 지하철 안에서 한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창밖을 바라본다. 그 시선은 무언가를 찾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두꺼운 책을 펴고 줄을 긋기도 하고, 조용히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 순간, 그들은 스마트폰 화면 속 세계를 넘어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된다. 그들은 지하철이라는 작은 공간을,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간으로 바꾸어 버린다.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은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다.

정보의 바다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멀리 떨어진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는 이 도구에 종속되기보다는, 그것을 주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다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자.

지하철 창밖으로 스쳐가는 교외의 풍경을 보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시도해 보자.

잠시라도 고개를 들어 밖을 보고,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보자.

책 한 권을 꺼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다.

지하철 안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그 속의 문장을 음미해 보자.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우리의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눈을 감아도 좋다. 지하철 안의 소음 속에서 나만의 평온을 찾아내는 것, 그 역시 중요한 경험이다.

지하철 안의 풍경은 시대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잃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도구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우리의 시야를 좁힐 위험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 좁아진 시야에서 벗어나, 다시금 고개를 들어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 작은 변화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오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당신은 무엇을 볼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보자.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이야말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새로운 방향이 아닐까 싶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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