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곤 시인의 '8월의 끝 자리'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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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끝 자리
시인 박영곤
폭염으로 들아 붙이는 폭력성
지친 걸음 땀방울로 시름케 하는 태양
내 손은 황금 손
한 폭은 겨울 설에 묻어두고
한쪽은 강산에 걸어 두어
서리 바람 이슬로 벗하게 하려네
푸른 하늘 끝에 전설을 묶어
그리움 가득 재단 쌓을 때
창공은 추억의 잔주름 펴고 있구나
먼 길 떠날 철새들 황금 들판 물들이고
다람쥐는 도토리 모아 겨울 준비 한창일 때
천지를 오색 물감으로 재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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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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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곤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노래하는 시인으로, 그의 삶과 작품은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는 데 중심을 둔다.
그의 시는 대체로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묘사하며 인생의 다양한 국면을 조망한다.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전한다. 그의 시에서는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감정이 서로 맞물려 흐르는 특징이 돋보이며, 이를 통해 시인은 인간 삶의 근원적 가치와 철학적 성찰을 담아낸다.
"폭염으로 들아 붙이는 폭력성 / 지친 걸음 땀방울로 시름케 하는 태양 / 내 손은 황금 손"
첫 번째 행에서는 여름의 끝자락, 특히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열기와 피로감을 표현하고 있다. '폭염'과 '특력성'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더위가 아닌,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강한 여름의 기운을 암시한다. '지친 걸음'과 '땀방울'은 여름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단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며, '태양'이 그 고단함의 원인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내 손은 황금 손'이라는 구절에서는 이러한 고난을 긍정적인 결과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황금 손'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수확의 시기를 맞이하는 농부의 손길일 수도 있고, 폭염을 견디고 성숙해진 자신을 의미할 수도 있다.
시인은 여기서 자연의 고통을 긍정적인 성장의 과정으로 전환하는 역설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한 폭은 겨울 설에 묻어두고 / 한쪽은 강산에 걸어 두어 / 서리 바람 이슬로 벗하게 하려네"
이 행은 자연의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한 폭'과 '한쪽'이라는 표현은 자연의 다양한 면모를 상징한다.
'겨울 설에 묻어두고'라는 표현은 추운 겨울의 고요함과 정적을 의미하며, '강산에 걸어 두어'는 넓고 탁 트인 자연을 상상하게 만든다. '서리 바람'과 '이슬'은 각각 차가움과 부드러움을 상징하며, 이들이 '벗하게 하려'는 시인의 의도는 자연의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시인은 여기서 자연의 두 가지 상반된 특성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을 제시하며, 인생 역시 그러한 균형과 조화 속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푸른 하늘 끝에 전설을 묶어 / 그리움 가득 재단 쌓을 때 / 창공은 추억의 잔주름 펴고 있구나"
이 행에서는 '푸른 하늘 끝'이라는 표현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과 미지의 세계를 암시하며, 그곳에 '전설을 묶어'놓는다는 것은 인간의 꿈과 희망,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하늘에 투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움 가득 재단 쌓을 때'는 과거의 기억과 그리움을 통해 현재의 삶을 새롭게 구성하고 재단하는 과정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추억의 잔주름'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자취를 나타내며, 이는 인간의 삶에서 경험과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시인은 여기서 기억과 추억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정서적 성숙을 도모하고 있다.
"먼 길 떠날 철새들 황금 들판 물들이고 / 다람쥐는 도토리 모아 겨울 준비 한창일 때"
이 부분에서는 철새와 다람쥐라는 두 가지 자연의 상징적 존재를 통해 생명과 변화, 준비의 중요성을 노래하고 있다. '먼 길 떠날 철새들'은 계절의 변화를 상징하며, '황금 들판'이라는 표현을 통해 풍요로움을 시각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람쥐는 도토리 모아 겨울 준비 한창일 때'라는 구절은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하는 자연의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여기서 자연의 순환과 그 속에서 준비와 예비의 중요성을 통해 인생의 교훈을 끌어내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운명에 맞게 준비하고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천지를 오색 물감으로 재단한다"
마지막 행은 자연의 풍요로운 색채와 다양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천지'와 '오색 물감'이라는 단어는 자연이 가진 무한한 색채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며, 이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다채롭고 풍부한지에 대한 시인의 깨달음을 전달한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영감을 얻고자 한다. '재단한다'는 표현을 통해 시인은 자연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자 한다. 이는 시인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단순한 수용이 아닌,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박영곤 시인의 시 '8월의 끝 자리'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철학적 깨달음과 정서적 성숙을 제시한다. 시인은 자연의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변화하는 계절과 자연 속에서 인간이 겪는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시적 표현은 독자들로 자연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 시의 각 행은 자연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인간의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독자에게 강한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서 인간의 삶과 철학을 끌어내는 능숙한 시적 기교를 발휘하고 있다. 박영곤 시인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 그 둘 사이의 조화를 깊이 탐구하며, 그 속에서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