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넋, 밤하늘의 성좌로 영원하여라!
엄창섭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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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넋, 밤하늘의 성좌로 영원하여라!
- 한국전쟁 16개국 참전 용사의 뜻 추모하며
시인 엄창섭
‘고요한 은자(隱者)의 나라’ 한반도 지켜내려고
낮은 산자락이 신록에 젖는 생명의 계절에
수송기와 함선으로 급파된 UN의 16개 참전국의
국적과 언어, 그리고 피부색이 다른 젊은 병사여!
죽미령과 장진호, 한편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에서
혹한의 참호 속에서 기아의 고통 참아내다 가끔
“신이여, 내일을 허락하소서!”를 신음처럼 토해내며
막중한 소임 수행한 자랑스러운 초병(哨兵)들이여!
다국적인 UN의 깃발 아래서 평화의 소중함 위해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화와 파편 속에서도
결사 항전으로 침략군을 38선 북으로 후퇴시킨
심장 찢긴 ‘형제의 나라’ 그 고귀한 넋들의 희생으로
이제 자주 국방력을 갖춘 대한민국은 ‘하늘의 축복’이다.
놀라워라. 소중한 목숨으로 이 땅 지켜준 뜻 추모하여
정녕 심장에 깊이 기리려는 감사의 축제 날이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위대함은
임들의 값진 희생 뒤, 진귀한 보석의 빛남이며
전쟁의 상흔에 의한 인류의 밝은 소망이어라.
온몸으로 일깨워준 임의 삶은 하나의 신앙,
하늘 맑아 자유로운 영혼은 충격일지라도
겨레의 자존 지켜준 고귀한 넋 천년 바람이다.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들이 감사의 뜻을 기려
저토록 보석에 빚어낸 설치예술전의 헌정에
‘신이 흘린 눈물’의 반짝임은 신선한 충격이다.
이국 병사의 선혈(鮮血), 천연루비로 기획한 까닭
지극히 성스러운 밤의 성좌(星座)로 영원하리니
아흐, 불변의 표징 외경스러워 레퀴엠(Requie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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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ㆍ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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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엄창섭 시인이 배선희 시인과 박성진 시인이 기획한 '한국전쟁 UN 22개국 중 16개국 그 참전 용사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며'라는
보석 설치미술 작품전을 기리며 두 시인에게 바친 헌정시이다.
엄창섭 시인은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며 그들의 넋을 밤하늘의 성좌로 비유한 시를 통해,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을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그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함께하며, 이를 시적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 여정이었다. 또한, 그는 가톨릭 신앙의 정신과 자비, 평화, 인류애를 시의 근간으로 삼고, 전쟁과 희생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존경을 표출한다. 이 시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UN 16개국 병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며, 예술과 시를 통해 그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에서 탄생하였다.
첫 번째 연은 "고요한 은자(隱者)의 나라’ 한반도 지켜내려고"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한국의 고요함과 평화를 수호하려는 시적 서사로 나아간다. '은자의 나라'라는 표현은 외세의 간섭 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을 지향하던 조선의 전통적 이미지를 환기시키며, UN 참전국들의 지원과 희생이 그러한 평화를 되찾고자 한 목적임을 강조한다. 생명의 계절에 젖은 산자락의 이미지와 대조적으로 참전 병사들의 고통과 희생을 대비시키며, 그들의 역할을 '신의 뜻을 수행한 초병'으로 고양한다.
"수송기와 함선으로 급파된 UN의 16개 참전국의 국적과 언어, 그리고 피부색이 다른 젊은 병사여!"에서는 국적과 언어, 피부색이 다른 다국적 병사들이 한반도에 모여들어,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함께 싸운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시인은 참전 용사들의 다양성을 부각하여 그들의 연합된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강조한다. 그들의 인종적,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은 연대가 한국의 평화를 지켜낸 바탕임을 밝히고 있다.
"죽미령과 장진호, 한편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한국전쟁의 주요 전투들을 언급하며 참전 병사들이 겪었던 극한의 상황을 부각한다. 이러한 전투에서 용사들은 혹한과 기아 속에서도 '신이여, 내일을 허락하소서!'라는 절망 속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루하루를 버텼음을 보여준다. 이는 그들의 고통과 희생이 얼마나 깊고 처절했는지에 대한 묘사이면서도, 그 고통을 뛰어넘어 결국엔 승리를 거둔 이들의 의지와 신념을 강조한다.
세 번째 연에서는 "다국적인 UN의 깃발 아래서 평화의 소중함 위해"라는 구절로 UN 참전국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싸운 모습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들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화와 파편 속에서도 결사 항전으로 침략군을 38선 북으로 후퇴시킨" 영웅들로서, 형제의 나라의 가슴 아픈 상흔을 감내하며 평화를 위해 몸 바친 이들임을 나타낸다. 이로써 '형제의 나라'는 한국을 뜻하는 동시에, 피를 나눈 이들, 즉 참전 용사들과의 형제애를 표현한다.
네 번째 연에서는 "이제 자주 국방력을 갖춘 대한민국은 ‘하늘의 축복’이다"라는 문장을 통해,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이 자주국방을 갖추게 되었음을 선언한다. 이는 그들의 희생이 단지 과거의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밑바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한국전쟁의 희생을 '하늘의 축복'으로 전환시키며,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위대함은 임들의 값진 희생 뒤, 진귀한 보석의 빛남이며"에서는 전쟁의 상흔이 고귀한 희생의 빛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희생과 상흔을 보석에 비유함으로써, 참전 용사들의 고귀한 넋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극을 넘어선 인류의 소망과 평화에 대한 찬양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이국 병사의 선혈(鮮血), 천연루비로 기획한 까닭 지극히 성스러운 밤의 성좌(星座)로 영원하리니"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은 전쟁에서 흘린 피를 천연 루비로 비유하며,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밤하늘의 별자리로 영원히 빛날 것임을 시적으로 승화하고 있다. 여기서 '성스러운 밤의 성좌'는 희생자들이 저세상에서도 영원한 빛으로 남을 것이라는 신앙적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에 "아흐, 불변의 표징 외경스러워 레퀴엠(Requiem)이다"라는 구절로, 이 시는 그들의 영혼을 위한 레퀴엠, 즉 진혼곡으로 마무리되며, 참전 용사들에 대한 깊은 경의와 존경을 드러낸다.
이 시의 감성적 측면은 전쟁의 비극을 넘어선 인간애와 평화의 가치에 대한 찬양이다. 시적 이미지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 피어난 인류애와 희망을 표현하며, 독자로 하여금 깊은 감동과 반성을 유도한다. 엄창섭 시인의 가치 철학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시는 역사적 비극을 초월하는 영원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총평하자면, 엄창섭 시인의 「고귀한 넋, 밤하늘의 성좌로 영원하여라!」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UN 16개국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시적 언어로 고양하며 그 의미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 시는 단순한 전쟁 추모시를 넘어, 고통과 상처를 예술적 언어로 승화시켜 자유와 평화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시인은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용사들이 한반도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역사를 한 폭의 드라마처럼 묘사하고,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밤하늘의 별자리에 비유함으로써 그 영원한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시의 구성은 각기 다른 전쟁의 장면과 그 속에서 고뇌하며 싸웠던 병사들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면서도,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첫 연에서 '은자의 나라'로 시작해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묘사하고, 마지막 연에 이르러 ‘성스러운 밤의 성좌’로 영원한 기억을 상징하는 서사는 시적 장치로서 매우 효과적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전쟁의 비극적 현실과 그 속에 깃든 인류애, 나아가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동시에 체감할 수 있다.
특히 이 시는 참전 용사들의 피와 땀을 '천연루비'로 비유하거나, 그들의 고통과 염원을 '신이 흘린 눈물'로 표현하는 등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그들의 희생이 결코 잊혀서는 안 될 고귀한 가치임을 강조한다. 시적 언어의 치밀한 사용과 감각적인 표현은 시의 정서적 깊이를 더하며,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엄창섭 시인의 시적 철학은 이 시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전쟁의 상처와 희생을 단순한 비극으로 그리지 않고, 그것을 넘어선 인류의 연대와 평화에 대한 염원으로 승화시킨다.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단순한 역사적 기록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 빛나는 인간애와 자유의지를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는 역사와 예술, 신앙과 인류애가 결합된 독창적인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고귀한 넋, 밤하늘의 성좌로 영원하여라!」는 전쟁과 희생을 예술적, 철학적 깊이로 재조명하며, 독자로 하여금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그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시이다. 시적 이미지와 언어의 정교한 배치, 그리고 엄창섭 시인의 가치관과 철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시는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이며,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시는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모든 용사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경의와 감사의 노래로, 그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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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은 1945년에 강릉에서 태어났다. 1973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으로 석사 학위를 1986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 2010년까지는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엄창섭 교수님은 제자 사랑이 대단하다.
그는 후덕한 인품을 지니고 있어
많은 제자의 섬김을 받는다.
특히, 파워블로거인 '페이지 배선희' 시인과
천재 기인 '박성진' 시인은 엄 교수님을
극진히 모신다.
청람 또한 엄 교수님을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
시인 활동
1977년 문예지 《시문학》에 〈새벽에 출범〉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바다와 해》(1980), 《땅에 쓴 장시》(1987), 《눈부신 약속》(1990), 《생명의 나무》(1991), 《골고다의 새》(1993) 《열매 따기》(1994), 《신의 나라는 열매를 팔지 않아》(2004), 그의 대표 시를 모은 《사고가능성》를 출간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