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종민 시인의 '노을'을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노을





시인 오종민







먼 길을 달려온 태양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

산마루 난간을 붙잡고
태연한 척 안간힘을 써보아도
조금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꺼져 가는 심장이
피를 뿜어내고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인다

그래도 태양이다
그토록 아름답다
죽어 가는 모습까지도

추한 모습 남기기 싫어
마지막 불티마저 사위고 나면
검은 바탕 위에
촛불을 흩어놓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오종민 시인은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존재의 끝자락에서조차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자연의 위대함을 시를 통해 표현한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유한성을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노래하는 시인으로, ‘노을’에서는 태양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오종민 시인의 작품은 독자에게 삶의 소멸과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하며, 그의 철학적 성찰이 돋보인다.

먼저, 첫 번째 행인 "먼 길을 달려온 태양이 /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태양의 긴 여정을 상징하며, 인간 삶의 고단함과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며 하루의 여정을 마감한다.
이러한 태양의 모습은 우리 삶의 하루하루를 상징적으로 그려내며,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태양의 숨 고르기를 통해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비유한다. 여기서 '마지막 숨'은 죽음의 문턱에서 느끼는 인간의 고독과 힘겨움을 나타낸다.

이어지는 "산마루 난간을 붙잡고 / 태연한 척 안간힘을 써보아도 / 조금 흔들리는 것은 / 어쩔 수 없다"에서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무력함을 보여준다.
‘산마루 난간을 붙잡고’라는 표현은 생명력이 끝나가는 상황에서의 절박함과 저항을 의미하며, ‘태연한 척 안간힘을 써보아도’라는 구절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체면을 지키려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낸다.
결국 ‘조금 흔들리는 것’은 죽음의 불가피함과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나타낸다. 이는 삶의 끝자락에서 조차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철학을 반영한다.

"꺼져 가는 심장이 / 피를 뿜어내고 /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인다"는

태양의 붉은 노을을 생명의 피로 표현함으로써, 죽음의 순간이 단순한 소멸이 아닌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자 극적인 아름다움임을 강조한다.
특히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인다’는 이미지적 표현은 이 작품의 압권壓卷이다.

이는 노을의 붉은빛을 머리카락에 비유하며, 생명력이 약해져 가는 순간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강렬한 의지를 상징한다.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미적 가치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자연의 이치 속에서 발견되는 죽음의 장엄함을 묘사한다.

"그래도 태양이다 / 그토록 아름답다 / 죽어 가는 모습까지도"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태양의 모습을 미화하며, 인간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인은 죽음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적 가치를 유지하는 태양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이는 삶의 끝자락에서도 우리가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추한 모습 남기기 싫어 / 마지막 불티마저 사위고 나면"은

태양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추한 모습’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불티를 태워버리는 태양의 모습은, 인간이 죽음 앞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시인이 삶의 아름다움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모두 긍정하는 철학을 담고 있으며, 인간이 그 과정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마지막 행인 "검은 바탕 위에 / 촛불을 흩어놓는다"에서는

태양이 진 뒤의 하늘을 묘사하며, 죽음 후 남겨진 여운과 그 여운 속에 남아있는 희망의 불씨를 표현한다.
검은 바탕 위의 촛불은 밤하늘의 별을 연상시키며, 죽음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임을 암시한다.
이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더불어, 죽음의 순간에도 빛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오종민 시인의 ‘노을’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그 속에 담긴 미적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그는 죽음을 단순히 어둡고 비극적인 사건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삶의 정점에서 맞이하는 하나의 장엄한 순간으로 해석한다.
시의 이미지들은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배치되어 독자에게 강한 시각적 인상을 남기며,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인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독자로 시의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느끼게 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찾아낼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한다. 오종민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유한성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그 속에서 빛나는 미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시로 승화시켰다.
그의 시는 독자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허만길 시인의 시 '당신이 비칩니다'를 청람 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