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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피어오를 때

청람 김왕식







노을이 피어오를 때



청람 김왕식





저녁이 깊어갈 무렵,
하늘은 천천히 붉은 물결로 물들어간다. 하루의 긴 여정 끝에 서쪽 하늘에 몸을 기대는 태양.
한낮의 뜨거운 정열을 내려놓고, 이제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마지막 불꽃을 피운다.
노을은 그렇게 찾아온다.
마치 하늘에 거대한 화폭을 펼치듯, 그 위에 붉고도 깊은 빛을 천천히 풀어놓는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전해 준다. 저물어가는 태양의 몸짓은 격렬하지만, 그 안에는 고요함이 깃들어 있다. 마치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이가 마지막 순간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 앞에 서면 마음속의 모든 번잡함이 사라지고,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평온을 느끼게 된다.

노을을 바라보는 그 시간, 세상은 잠시 숨을 멈춘다. 공기는 차분해지고, 바람은 노을의 색을 실어 나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그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다. 노을은 단순한 자연의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철학이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그 순간의 태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노을은 죽음과도 같다.
그 죽음은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속에는 새로운 시작의 기운이 숨어 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태양은 어둠을 부르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별들이 하나둘씩 빛나기 시작한다. 인생도 이와 같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 끝이 새로운 시작임을, 노을은 조용히 속삭인다. 마치 하늘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그 뒤엔 언제나 새로운 빛이 깃들 것이라고.

노을은 또한 내려놓음의 철학을 가르친다. 태양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해 하루를 비추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떠난다. 그저 남은 빛으로 하늘을 물들일 뿐. 인생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더 이상 쥐고 있을 수도, 가지고 갈 수도 없는 것들을, 그저 아름답게 떠나보내는 것. 평온하게 사라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노을의 붉은빛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다. 그 빛은 격렬하지만 차분하고, 강렬하지만 부드럽다. 그 빛 속에는 우리가 살아온 모든 감정이 스며들어 있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기대와 좌절.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노을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노을을 볼 때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 감정은 슬픔일 수도 있고, 기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무엇이든 간에, 그 순간은 아름답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노을을 맞이할 수 있을까? 태양은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빛을 잃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만의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혜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이 진정한 우리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의 노을이 아름답게 빛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을은 우리에게 유한함 속에서의 충만함을 일깨워 준다. 태양은 영원하지 않다.
하루는 결국 끝이 난다.
그렇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한다. 오늘의 태양이 내일도 뜨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오늘의 노을을 충분히 음미해야 한다. 노을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일깨워 준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지만, 그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가는 우리의 몫이다.

노을을 보며 우리는 하루의 끝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 하루가 온전히 충만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이 노을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하루하루를 온전하게 살아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노을은 어떤 색일까? 그 빛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응축한 색일 것이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모든 것이 녹아든 색. 그 색이 아름답기를,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시작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노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삶의 끝과 새로운 시작, 내려놓음과 받아들임, 유한함 속에서의 충만함.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담아내는 이 자연의 예술 작품은, 우리에게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은 지고, 노을은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 노을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고, 다가올 새로운 날을 준비한다. 태양은 지지만, 삶은 계속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매일 새로운 노을을 그리고 있다.

노을이 붉게 피어오르는 저녁,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비추어 본다. 다시금, 우리만의 노을을 그려나갈 용기를 얻는다. 노을은 지지만, 그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또 다른 하루를 비출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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