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인 시인의 '동성동본이 빚은 슬픔'을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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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동본이 빚은 슬픔
시인 김 석인
전쟁고아나 미아들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누구 탓이랴
전쟁인가, 사랑 탓인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모와 생이별한 거다
다행이다
고아원이 있어서
원장님이 아버지가 된다
한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면서 이성을 알고
사랑을 배운 것이
동성동본은 요단강이었다
알량한 인륜 때문에
죽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더 무서워서 함께 죽는다고
자살은 동성동본이 빚은
기차 길 같은 슬픔이다
법이 진즉 바뀌었더라면
아까운 목숨들
저리 되지는 않았으리
슬프도다 슬프도다
동성동본으로 태어난 것이
아까운 목숨들
저리 되지는 않았으리
슬프도다 슬프도다
동성동본으로 태어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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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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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인 시인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개인의 삶의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중견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한국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제도가 개인에게 미친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한 감정적 갈등과 비극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전쟁 이후의 혼란과 고아로 자라난 아이들의 고통을 다룬 이 시에서 김석인은 시대적 상처를 생생하게 증언하면서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감정과 본능적 사랑을 직시하고 있다.
특히, "동성동본"이라는 전통적 제도와 그것이 빚어낸 비극적 결말을 통해 사랑과 죽음,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는 깊은 철학적 사유와 감정적 호소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쟁고아나 미아들은 /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 누구 탓이랴 / 전쟁인가, 사랑 탓인가 / 하지만 / 분명한 것은 부모와 생이별한 거다"
첫 연은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고아와 미아의 상실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구절은 이들이 겪는 정체성의 상실과 근본적 고독을 나타낸다.
'누구 탓이랴'라는 시어는 전쟁의 비극적 본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체념적인 어조를 띠고 있으며, 그 뒤를 잇는 '전쟁인가, 사랑 탓인가'라는 구절은 비극의 원인을 둘러싼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전쟁이라는 무자비한 현실 속에서 사랑조차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질문은 독자에게 깊은 반성의 여지를 남긴다. '부모와 생이별'은 상실의 확실성을 강조하며, 전쟁이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고 치명적인지를 절실하게 전달한다.
"다행이다 / 고아원이 있어서 / 원장님이 아버지가 된다 / 한 울타리 안에서 / 성장하면서 이성을 알고 / 사랑을 배운 것이 / 동성동본은 요단강이었다"
둘째 연은 고아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잃어버린 가족의 역할을 일시적으로 대체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원장님이 아버지가 된다'는 표현은 사회적 보호망의 역할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진정한 부모의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암시한다.
이어지는 '한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면서 이성을 알고 사랑을 배운 것'은 고아원이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의 본능적 성장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동성동본은 요단강이었다'는 구절에서 동성동본이라는 제도의 금기가 마치 요단강처럼 넘지 못할 경계로 작용함을 상징한다.
이는 사랑의 본질적 표현을 억제하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차단하는 제도의 폭력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알량한 인륜 때문에 / 죽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 더 무서워서 함께 죽는다고 / 자살은 동성동본이 빚은 / 기차 길 같은 슬픔이다"
셋째 연에서는 동성동본이라는 제도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강제적 이별이 죽음보다 더 두렵고, 그로 인해 자살을 택하는 극단적 선택이 이루어짐을 표현한다.
'알량한 인륜'이라는 표현은 동성동본이라는 사회적 규범의 가벼움과 무의미함을 비판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또한, '기차 길 같은 슬픔'이라는 비유는 슬픔이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철로처럼 길고도 반복적인 것임을 강조하며, 이 비극적 상황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는 곧 동성동본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했는지를 드러내며, 그 슬픔이 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문제임을 환기시킨다.
"법이 진즉 바뀌었더라면 / 아까운 목숨들 / 저리 되지는 않았으리 / 슬프도다 슬프도다 / 동성동본으로 태어난 것이"
마지막 연은 법 제도의 변화가 너무 늦었음을 아쉬워하며, 그로 인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비극적 운명을 한탄한다.
'법이 진즉 바뀌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적 표현은 현재의 변화를 환영하면서도, 그 변화가 너무 늦었음을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심정을 담고 있다. 반복되는 '슬프도다 슬프도다'라는 구절은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하며, 동성동본이라는 제도로 인해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이라는 시인의 통렬한 비판을 전달한다.
이는 곧 전통과 법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된 개인의 자유와 사랑을 회복할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김석인의 시 '동성동본이 빚은 슬픔'은 동성동본이라는 전통적 제도와 그로 인해 빚어진 비극적 결과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시인은 전쟁과 같은 사회적 대참사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그리고 그 상처가 어떻게 또 다른 억압의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서사적으로 풀어낸다.
그의 시적 표현은 매우 직설적이면서도 감각적 이미지와 비유를 통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며, 그 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는 사회적 제도와 인간의 본질적 갈등을 재조명하게 한다.
시 전체를 통해 시인은 단순한 제도 비판을 넘어, 사랑과 삶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다. 그의 시는 단순히 과거의 고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성찰과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김석인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