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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스토리 안성윤 작가의 '솔방울'을 청람 평하다

브런치스토리 청람 김왕식










솔방울


시인 안성윤






데구르르 데구
길가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
괜스레 발로 차 본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발로 찬 솔방울 주워
고이고이 모셔다가
흑토색 땅에 묻어주면
푸른 솔잎을 띄울 수 있겠니

그게 아니라면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구나
그럼 돌멩이라도 되겠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성윤 시인은 그의 시를 통해 일상의 작은 사물에 깃든 생의 고통과 회복의 가능성을 깊이 탐구하는 시인이다.
그의 삶은 종종 고단하고 무게감 있는 현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시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시선은 섬세하면서도 날카롭다.
'솔방울'에서도 작가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작은 솔방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투영하고, 그 고통 속에서도 생명의 가능성과 변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안성윤 시인의 작품은 자연과 일상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안에 숨겨진 철학적 가치와 미학적 감수성을 형상화하는 데 집중한다.

"데구루루 데구루루"

이 시의 첫 구절은 의성어 '데구루루'를 반복하여 시작한다. 이는 솔방울이 길가에서 구르는 모습을 리드미컬하게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시적 리듬을 부여한다. ‘데구루루’라는 표현은 단순한 움직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통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의미하며, 주체적으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가는 인간의 운명과 내면의 방황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솔방울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불안정한 상태를 투영하는 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

이 행에서는 구체적으로 솔방울의 위치가 제시된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은 버려진 존재, 소외된 존재로서의 의미를 함축한다.
이 구절은 솔방울이 자신의 본래 자리인 소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 상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시인은 이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소외감과 상실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길가에 버려진 물체로서의 솔방울은 인간의 삶 속에서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괜스레 발로 차 본다"

‘괜스레’라는 단어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행해지는 행동을 의미하며, 시인의 내면의 혼란스러움과 공허함을 나타낸다. 이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행동이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진동이 숨어 있다. 시인은 무심코 솔방울을 발로 차면서도, 그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파장을 느끼고 있다.
'발로 차 본다'라는 표현은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과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의 표출을 암시한다.

"아프냐"

짧고 간결한 이 한 마디는 솔방울에 대한 시인의 질문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아프냐’라는 구절은 솔방울의 아픔을 묻는 동시에, 자신이 겪고 있는 정서적 고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이 질문은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존재와 고통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은 독자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나도 아프다"

앞선 행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시인은 솔방울이 아프다면 자신도 아프다고 말한다.
이는 시인이 솔방울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인간의 본질적인 고통과 상처를 드러낸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진 이 구절은, 시인의 시적 자아가 자연 속의 사물과 교감하며, 그 사물 안에 자신의 아픔을 투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발로 찬 솔방울 주워 / 고이고이 모셔다가"

여기서는 솔방울에 대한 태도가 변화한다. 무심히 차던 솔방울을 주워 ‘고이고이 모셔다가’라는 표현은 그에 대한 애정 어린 태도로 바뀐다.
이는 시인이 자신이 무심코 상처를 주었던 존재를 다시 한 번 돌보고자 하는, 회복의 의지와 연결된다.
시인은 자신이 던진 아픔을 다시 품에 안으며 그 안에 깃든 생명력을 소중히 여기고자 한다.

"흑토색 땅에 묻어주면 / 푸른 솔잎을 띄울 수 있겠니"

솔방울을 흙에 묻어주는 행위는 일종의 재생과 변화를 향한 희망을 담고 있다. ‘푸른 솔잎’은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시인은 고통의 시간을 지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의 순환을 염원한다.
이는 솔방울의 죽음을 통한 재생과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며, 동시에 인간 내면의 치유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게 아니라면 /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구나"

이 구절에서는 시인의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만약 솔방울이 다시 자라날 수 없다면, 그를 세상에 던져 돌멩이가 되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는 절망과 희망 사이의 갈등을 담고 있으며, 더 이상 생명의 순환을 기대할 수 없다면 차라리 단단한 돌멩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표출하고 싶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 돌멩이라도 되겠지"

마지막 행에서 솔방울이 돌멩이로 변하는 이미지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물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이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며, 그 고통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환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존재의 견고함과 그 변화의 불가피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안성윤 시인의 ‘솔방울’은 사소한 일상의 사물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생명에 대한 성찰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시인은 솔방울을 중심으로 자신이 경험한 상처와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고통을 넘어선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시적 표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의 진동과 생동감 있는 이미지들은 독자로 시인의 내면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한다.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가치철학은 삶의 무상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재생과 회복의 가능성을 끝없이 탐구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작은 사물 속에 깃든 생명과 변화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며, 시인의 섬세한 시각과 감성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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