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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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의 미학
청람
살면서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단지 유려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대화의 고수는 자신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상대방이 말을 잘하게 유도하는 사람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길게 늘어놓기보다는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만들어낸다. 그들은 질문 하나로 상대방의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이런 이들은 대화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미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화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말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듣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청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더 많이 열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대화에서 진심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들의 감정을 공감할 때, 그들은 우리의 태도에 감동을 받는다. 그 순간, 그 대화는 단순한 말의 주고받음이 아닌 진정한 교류가 된다. 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데 중요한 열쇠는 바로 경청에 있다.
경청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상대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그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는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이야기의 전후 맥락과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상대방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게 된다.
실제로 말을 잘하는 사람들 중에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며, 상대방의 생각을 더욱 깊게 파고들도록 유도한다. 질문은 그 자체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며,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하지만 이 질문들은 단순히 '그랬어?' 같은 피상적인 것이 아닌,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왜 그런 선택을 했어?' 같은 진정성을 담은 질문이어야 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상대방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그들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하게 만든다.
이렇듯 말하기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고 공감대를 쌓는 과정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소리만 울리는 공간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교감을 찾는다. 이들은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 말을 길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이 스스로 돋보이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러한 배려와 존중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대화의 진정한 매력은 일방적인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데 있다.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해진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말할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우리 모두는 대화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말을 잘하는 것은 단지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적절한 순간에 침묵하고,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결국,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화려한 언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스스로를 더욱 잘 표현하게 도와주는 능력이다. 대화의 마법은 바로 그곳에 있다. 자기 자신이 빛나기보다, 상대방이 빛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소통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