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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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진실 한 짐 내립니다
시인 백영호
주님
슬프디 하얀 진실
한 짐 가지고 나왔습니다
연속되는
아림과 쓰림의 연장 시간
좌절이 등짝에 달라붙어
절망이 보따리 보따리 싸 들고
방 안 전체를 차지했습니다
얼굴은 웃음끼 잃었고
여유와 베풂은 이미 바닥나
짜증과 초조만이
득실거리는 나쁜 상황입니다
어여삐 사,
속죄의 잔으로 축사하시어
갈한 영혼에 하늘 평화의 강,
물결치게 하소서
목이 마르고
살이 타 들어가는 아픔 속에
하늘 이슬짐과 땅의 기름짐으로
가득가득 채워 주소서
이날의 간구가 한날의
고告함으로 그치게 하시고
내일은 응답에 대한
감사의 두 손 높이 들게 하소서
다만, 혼자의 간구라도
어여삐 여기사
여럿 간구로 받아 긍휼 주시어
미처 구하지 못한 이들의
아픔까지 치유로 허락하소서
응답이 있을 때만 감사 아니라
혹, 하늘의 뜻이 더딜지라도
조급함이나 낙담케 마시고
멀리 보시는 주님 안목 닮아
오직
주 영광만 감사 올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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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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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호 시인의 삶과 시는 그의 신앙과 내면적 고백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피어난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의 영혼의 방황과 절망을 드러내며, 동시에 신앙적 치유와 구원을 간구한다. 백영호의 시는 단순한 종교적 기도문을 넘어, 인간이 겪는 실존적 고통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몸부림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간절함과 고통은, 단순한 개인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인간의 정서로 확장된다.
이 시는 그러한 그의 문학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진실과 구원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 ‘하얀 진실’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각 행마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의 고백과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늘의 응답을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님 / 슬프디 하얀 진실 / 한 짐 가지고 나왔습니다"
시작부터 시인은 ‘주님’이라는 호칭을 통해 신에게 절박한 고백을 시작한다. ‘하얀 진실’은 순수하고 투명한 진리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 진실이 '슬프디' 하다는 표현에서 내포된 고통의 깊이를 암시한다.
'한 짐'이라는 표현은 이 진실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무겁고 풀기 어려운 숙제와 같음을 나타낸다.
이 표현에서 시인은 자신의 무거운 삶의 짐을 신 앞에 내려놓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드러낸다.
"연속되는 / 아림과 쓰림의 연장 시간 / 좌절이 등짝에 달라붙어"
여기서 시인은 삶의 연속된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아림과 쓰림’은 단순한 신체적 아픔을 넘어 영혼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의미한다. ‘좌절이 등짝에 달라붙어’라는 표현은 그 고통이 물리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고 지워지지 않음을 상징한다.
이는 시인이 느끼는 절망이 그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절망이 보따리 보따리 싸 들고 / 방 안 전체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절망의 강도를 더해 표현하고 있다. '보따리 보따리 싸 들고'라는 구체적인 이미지화는 절망의 크기와 무게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또한 '방 안 전체를 차지했습니다'라는 구절은 개인의 내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절망의 광활함을 묘사한다.
이는 내면이 절망으로 잠식된 상태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얼굴은 웃음끼 잃었고 / 여유와 베풂은 이미 바닥나 / 짜증과 초조만이 / 득실 거리는 나쁜 상황입니다"
이 연에서는 절망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을 상세히 그린다. ‘얼굴은 웃음끼 잃었고’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의 상실이 나타나며, ‘여유와 베풂은 이미 바닥나’는 그가 인간관계 속에서 느끼는 정서적, 영적 빈곤을 드러낸다.
짜증과 초조가 득실거리는 상황은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태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여삐 사, / 속죄의 잔으로 축사하시어 / 갈한 영혼에 하늘 평화의 강, / 물결치게 하소서"
이 부분에서는 구원과 평화의 간구가 강하게 드러난다. ‘어여삐 사’는 간절한 부탁을 하는 표현으로, '속죄의 잔'은 죄를 씻어내고 새로운 영적 평안을 가져다주는 도구로 묘사된다.
'하늘 평화의 강, 물결치게 하소서'라는 구절은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는 신성한 평화와 회복을 염원하는 시인의 간절함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목이 마르고 / 살이 타 들어가는 아픔 속에 / 하늘 이슬짐과 땅의 기름짐으로 / 가득가득 채워 주소서"
이 연에서는 시인의 고통과 그 속에서 신에게 간구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목이 마르고 살이 타 들어가는 아픔’은 육체적, 정신적 갈증과 고통을 의미하며, ‘하늘 이슬짐과 땅의 기름짐’은 신이 주는 은혜와 풍요를 바라는 마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표현이다.
이는 인간의 연약함과 신의 전지전능함을 대비시키며,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태도를 극적으로 강조한다.
"이날의 간구가 한날의 / 고告함으로 그치게 하시고 / 내일은 응답에 대한 / 감사의 두 손 높이 들게 하소서"
여기서는 간구의 끝이 단순한 고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한날의 고告함으로 그치게 하시고'라는 표현은 고백의 간절함이 하루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며, '내일은 응답에 대한 감사의 두 손 높이 들게 하소서'라는 구절은 그 응답에 대한 확신과 감사의 태도를 미리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다만, 혼자의 간구라도 / 어여삐 여기사 / 여럿 간구로 받아 긍휼 주시어 / 미처 구하지 못한 이들의 / 아픔까지 치유로 허락하소서"
시인은 여기서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이 미처 구하지 못한 이들의 아픔까지도 치유해 달라는 간구를 한다. 이는 시인의 기도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의 신앙심과 타인에 대한 연민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응답이 있을 때만 감사 아니라 / 혹, 하늘의 뜻이 더딜지라도 / 조급함이나 낙담케 마시고 / 멀리 보시는 주님 안목 닮아 / 오직 / 주 영광만 감사 올리게 하소서, "
마지막 연은 응답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응답이 없거나 더딜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다짐한다. 이는 신앙의 성숙함과 신의 시선에서 사물을 바라보려는 시인의 태도를 나타낸다.
인간의 조급함을 경계하며, 오로지 신의 영광을 위해 감사하겠다는 다짐은 깊은 신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백영호의 시는 단순한 종교적 시구를 넘어서 인간 내면의 깊은 고백과 신에 대한 절실한 간구를 담고 있다.
그의 시어는 겸손하고 간절하며, 마치 독백하듯 신과의 대화를 이끌어낸다. '하얀 진실'이라는 시적 진술은 순수하고 투명한 진실을 의미하며, 이는 동시에 인간 존재의 무게와 고통을 드러낸다.
시인의 표현들은 구체적이고 시각적이어서 독자가 시인의 내면을 생생히 체감하게 만든다.
각 연마다 드러나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은 시인의 삶의 일부분을 반영하며, 그의 신앙적 고민과 성찰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이 시는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며, 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시인의 가치철학을 잘 보여준다.
ㅡ 청람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