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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병을 앓는 사람들

청람 김왕식










가을병을 앓는 사람들



청람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을병을 앓는다. 가을 여자와 가을 남자, 그들은 가을을 맞이할 때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내면을 탐색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느낀다.

가을 여자는 혼자 떠나고 싶어 한다. 어디로든, 누구와도 상관없이, 그녀는 떠난다. 낙엽이 땅을 덮고 바람이 부는 계절, 그녀의 마음은 더 깊어진다. 그녀는 여행길에서 ‘여자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혼자 있는 시간을 고요히 음미한다. 도시의 소음과 일상의 소란함을 뒤로하고, 그녀는 내면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깨운다. 그녀는 스스로를 옭아매던 결박에서 벗어나 어딘가 깊숙이 숨겠노라 다짐하지만, 그 결심은 늘 바람에 날려버린 꽃잎처럼 일시적인 희망일 뿐이다.

새벽이 오면, 한적했던 그녀의 마음속에는 다시금 생명이 소생한다. 그녀는 조용한 새벽을 가르며 첫차를 타고 돌아온다. 돌아온다 해도,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바람을 탄다. 낯선 도시, 낯선 길을 걸으며 그녀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아간다. 어쩌면 그녀는 가을이란 계절 자체를 여행하는지도 모른다. 가을의 끝없는 길 위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찾고, 또 잃는다. 그녀의 여행은 끝이 없다.

가을 남자는 다르다. 그는 가을이 오면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기억 속의 누군가를 추억하는 그의 모습은 쓸쓸하지만, 그 쓸쓸함 속에도 한 가닥의 따스함이 있다. 그는 어느 후미진 골목의 선술집에서 단풍이 물든 어느 가을을 떠올린다. 그 가을, 산기슭에 피어있던 장미는 눈물을 흘렸다. 그 장미의 눈물은 마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슬픔의 결정체처럼, 그를 가만히 어루만진다. 그는 마음의 지도를 펼쳐두고 그 옛날의 추억을 더듬어가지만, 그가 더 깊이 회상할수록 장미의 모습은 점점 흐릿해진다.

그리움은 때로는 선명하게, 때로는 흐릿하게 그의 마음속을 가로지른다. 술잔을 비울 때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신음 소리는 사라져 간 사랑에 대한 애도의 노래처럼 그의 귓가에 맴돌 뿐이다.
그래서 혼자 술 마시는 가을 남자는 더욱 쓸쓸하다. 하지만 그 쓸쓸함 속에서 그는 자신을 다시 찾는다. 고독 속에서, 그는 자신을 다시 직면하게 된다.

가을 여자와 가을 남자.
그들은 가을이면 어김없이 이 계절이 가져다주는 독특한 병을 앓는다. 그 병은 고독이라는 이름의 감정일지도 모르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일지도 모른다.
그 병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가을이 주는 정서적 감흥은 우리 모두가 겪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을이란 계절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던 감정들을 서서히 일깨운다. 잊고 지냈던 것들, 묻어두었던 것들, 그리고 다시는 꺼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둘 다시 우리를 찾아온다.
가을은 그렇게 우리에게 늘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이 오면, 가을 여자는 혼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고, 가을 남자는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가을이 주는 고독과 추억, 그리고 감성은 그들의 마음을 그렇게 깊이 물들인다. 그리하여 가을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계절이 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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