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으로 왔다가 유기견으로 가는 시대
박철언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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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으로 왔다가 유기견으로 가는 시대
시인 박철언
주인을 거느린 애완견의 산책길
신하들이 왕의 발걸음에 맞추듯
애완견 산책길마다 시중드는 주인
호기심 어린 후각의 서행과 멈춤도
다른 종과의 눈 맞춤과 스킨십도
예정과 달리 길어지는 운동시간
격조 높은 동행을 위한 미용실 행 사회성과 에티켓을 위한 유치원 행 해외여행에도 발 묶인 채
부모보다 애완견이 상전이 된 세상
자녀 대신 입양된 딩펫족* 부부에게도 가족 대신 위안이 되는 독거노인에게도 상대가 없어도 아쉽지 않은 비혼주의자에게도
그 촉감과 그 순종, 주인 향한 그윽한 응시도
주인의 감정을 미리 읽는 진정한 반려 상대
주인에게 스며든 애완견의 삶이지만 애완견에게 스며든 주인의 삶이지만 명절연휴나 휴가철에 버려지기도 하는 유기견들
병들고 나이 들면 버려지기도 하는 유기견들
양심마저 유기하는 시대가 서글프다
*딩펫(dinkpet)족: 자녀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 딩크족(DINK:double income no kids)과 애완동물 (pet) 합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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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ㆍ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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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시인은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문제를 시적 언어로 예리하게 풀어내는 작가로, 그의 작품은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인간 내면의 문제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둔다.
박철언 시인의 작품 세계는 주로 인간과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모순과 갈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시 ‘애완견으로 왔다가 유기견으로 가는 시대’에서도 인간과 반려동물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의 가치관과 윤리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시인은 인간이 가진 양면성과 사회적 모순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단면을 명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반려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비판하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시의 첫 부분에서 시인은 "주인을 거느린 애완견의 산책길"이라는 표현을 통해 애완견과 주인의 관계를 역전시켜 표현한다.
주인이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애완견이 주인을 거느리고 산책하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이 변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동물의 서열이 올라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애완견이 현대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를 나타내며, 동시에 그 안에 내포된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현상을 담아내고 있다.
"신하들이 왕의 발걸음에 맞추듯"이라는 비유는 애완견에게 헌신적으로 맞추어주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이어서 시인은 애완견의 산책과 관련된 여러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호기심 어린 후각의 서행과 멈춤도 / 다른 종과의 눈 맞춤과 스킨십도"는 애완견의 본능적인 행동을 묘사한 구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본능적 행동에도 주인이 일일이 시중을 든다는 점이다. 이는 주인의 역할이 애완견에게 어떻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며, 현대인이 애완견에게 쏟는 과도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다.
"격조 높은 동행을 위한 미용실 행 / 사회성과 에티켓을 위한 유치원 행" 구절에서는 애완견의 외모와 사회적 교양까지 챙기려는 인간의 욕망이 드러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애완견이 자신의 지위를 상징하는 도구로 전락한 상황을 비판하는 동시에, 사람 간의 관계가 동물의 교양과 외모로 대체되는 과정을 풍자하고 있다. "해외여행에도 발 묶인 채"라는 표현은 애완견을 떠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며, 이는 현대인들의 정서적 의존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는 "부모보다 애완견이 상전이 된 세상"과 "자녀 대신 입양된 딩펫족 부부에게도"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관계와 가족 구조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자녀 대신 애완동물을 선택하는 부부와 독거노인, 비혼주의자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현대사회의 풍경이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대인의 삶에서 반려동물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동시에 이는 인간관계의 소외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적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을 드러낸다.
"주인에게 스며든 애완견의 삶이지만 / 애완견에게 스며든 주인의 삶이지만"이라는 구절에서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간과 애완견의 관계를 강조한다.
이는 상호의존적이면서도 균형을 잃은 관계를 나타내며, 결국 인간이 선택한 편리함에 의해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애완견의 운명을 암시한다.
애완견은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받는 한편, 상황에 따라 쉽게 버려지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이로써 시인은 현대인의 양심과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며, "양심마저 유기하는 시대가 서글프다"라는 결론으로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박철언 시인의 '애완견으로 왔다가 유기견으로 가는 시대'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반려동물 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양면성과 사회적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낸 작품이다.
시인은 풍자諷刺와 비유比喩를 통해 애완견과 인간의 관계를 역전시켜 표현함으로써, 현대인의 왜곡된 애정과 도덕적 결여를 비판한다.
동시에,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위안이 되고,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애완견의 운명을 통해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윤리적 결함을 꼬집는다.
시의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날카롭고, 감성적인 동시에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는 힘이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진정한 반려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며,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의식을 환기시키는 메시지를 전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