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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건만

청람 김왕식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건만





청람






고향의 느티나무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잔잔히 남아 있는 추억의 한 조각이다.
느티나무는 그 자체로 우리 고향을 상징하며,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한 그루의 나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 속에 고향의 역사를 간직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생명체였다.
오늘날, 그 느티나무는 고독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추석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교통체증에 갇히더라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고향을 찾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고향의 들판을 가로지르며 자라온 세대들에게 고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과 정감이 깃든 삶의 원천이다.
그 기억의 중심에는 마을의 수호신과도 같았던 느티나무가 서 있다.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자리 잡고 있던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보호자이자 안식처였다.


오늘날 고향을 찾아가면, 그곳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도시로 떠나고, 마을에는 빈집만이 늘어간다.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기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마을은 쇠락하고, 그 이름조차 잊혀 간다.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한결같이 서 있다. 그 느티나무도 예전 같지 않다. 마을 주민들이 떠나고 나면 느티나무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야위어간다.


느티나무는 고향의 기억을 간직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마을 공동체의 삶은 사라지고 있지만, 느티나무는 여전히 고향에 서서 우리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느티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우리는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웃고, 울며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다. 이제는 그 느티나무도 고향처럼 점점 말라가고 있지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느티나무 아래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고, 그늘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 오수午睡를 즐기기도 했다. 평상에서는 바둑과 장기를 두며 시조창時調唱을 부르던 이들, 송편을 빚으며 수다를 떨던 아낙들, 구슬치기를 하며 뛰어다니던 아이들, 엿을 팔던 엿장수의 목소리가 여전히 느티나무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길게 뻗은 가지에 매달린 그네는 과년瓜年한 처녀들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뛰놀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향과 느티나무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고향은 말라가고 있지만,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느티나무가 무성한 잎들을 흔들며 웃음을 터뜨리는 날이 다시 오기를, 그날에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와 다시 한 번 느티나무 아래에서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느티나무는 우리의 고향이자, 우리의 추억이기 때문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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