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희 시인의 '조율'을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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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시인 문희 한연희
쪽빛 밤하늘 별빛이 노곤하다
서로 다른 눈짓 분주하나
부스러기 없는 의견
다정히 곰삭았다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시간
흙을 찢고 나온 파리한 새싹이
매서운 꽃샘추위에 맞서고 있다
시린 발 아랫목으로 뻗으면서
아리까리하다 거무튀튀한 내 마음 얼어붙은 입 열어 한 모금 목 축이면 산수유꽃이 뒷산에 올라
생강나무 꽃이라 우겨도 좋으리라
외딴섬은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봄을 끌고 오는 모터 소리, 이려니 해도
구름에 실려 오다 좌르르 내려앉으면 꽃마리, 봄맞이꽃 구름 떼로 일어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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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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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 한연희 시인은 섬세한 감성으로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가다.
한연희 시인의 시에는 자연의 흐름과 변화 속에서 인간의 감정과 삶의 모습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담겨 있으며, 이를 통해 그녀의 작품은 독특한 시적 언어와 감성을 형성하고 있다.
시 '조율' 역시 작가의 내면 깊은 곳에서 비롯된 통찰력과 감각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의 감정적 울림을 조화롭게 담아낸다.
한연희 시인의 시는 대개 인간의 삶과 자연의 경계에서 드러나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며, 그녀의 작품에서는 생명과 계절의 변화, 그리고 그 속에 얽힌 인간의 사유와 감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조율'은 그러한 그녀의 시적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쪽빛 밤하늘 별빛이 노곤하다"는 시의 시작을 알리는 구절로, 깊고 짙은 밤하늘 아래 별빛이 흐릿하고 노곤한 상태를 묘사한다. '쪽빛'이라는 단어는 선명하고 짙은 파란색을 의미하며, 밤하늘의 고요함과 그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형상화한다. 별빛의 '노곤함'은 밤하늘이 주는 차분함과 평화로움을 암시하며, 독자는 시인의 내면적 평온함과 자연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행은 밤의 정적과 자연의 신비로움이 결합된 이미지를 통해 시의 첫 인상을 강렬하게 남긴다.
"서로 다른 눈짓 분주하나"는 서로 다른 관점이나 감정들이 분주하게 교차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여기서 '눈짓'은 인간의 내면적 대화를 상징하며, '분주하다'는 그 대화들이 활발하게 오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시인의 내면적 갈등이나 다채로운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각기 다른 생각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조화를 이루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행은 시의 주제 의식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복합성을 드러낸다.
"부스러기 없는 의견 다정히 곰삭았다"는 서로의 의견이 부드럽게 녹아드는 과정을 묘사한다. '부스러기 없는'이라는 표현은 완전한 이해와 공감의 상태를 의미하며, '다정히 곰삭았다'는 표현은 시간과 함께 성숙해진 관계나 생각을 암시한다.
이는 인간 사이의 소통과 관계의 성숙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며, 시인은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뜻한 교류와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시간"은 계절의 경계에서 오는 변화의 순간을 상징한다. 겨울과 봄은 서로 상반된 계절이지만, 그 사이에는 변화의 흐름이 존재한다.
이는 인생에서의 전환기나 중첩된 감정을 표현하며, 시인은 이 중첩된 시간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들을 포착하고 있다.
"흙을 찢고 나온 파리한 새싹이 매서운 꽃샘추위에 맞서고 있다"는 새싹이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라나는 모습을 그린다. '흙을 찢고 나온'이라는 표현은 생명의 탄생과 강인함을 상징하며, '매서운 꽃샘추위'는 그러한 생명을 위협하는 외부의 시련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시인이 삶의 도전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새싹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생명력과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시린 발 아랫목으로 뻗으면서"는 추위에 얼어붙은 발을 따뜻한 아랫목으로 가져가는 장면을 그린다. '시린 발'은 고통이나 외로움을 상징하며, '아랫목'은 안식처나 위안을 의미한다.
이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따뜻함과 위안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암시한다. 시인은 이러한 장면을 통해 인간 내면의 아픔과 그 속에서의 회복과 치유를 표현한다.
"아리까리하다 거무튀튀한 내 마음"은 혼란스럽고 어둡게 얽힌 내면의 감정을 나타낸다. '아리까리하다'는 불분명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의미하며, '거무튀튀한'이라는 표현은 어두운 감정이나 상태를 상징한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내면적 혼란을 직시하는 순간을 그린 것이며, 이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시인의 노력을 느낄 수 있다.
"얼어붙은 입 열어 한 모금 목 축이면"은 얼어붙은 입이 풀리면서 한 모금의 물로 목을 축이는 장면을 그린다.
이는 긴장된 상황이나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는 순간을 상징하며, 시인이 자신의 내면적 고통을 해소하려는 모습을 암시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감정적 정화의 과정을 보여주며, 독자는 시인의 감정적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산수유꽃이 뒷산에 올라 생강나무 꽃이라 우겨도 좋으리라"는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묘사하며, 그것들이 어떻게든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자연의 다양성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나타낸다. 시인은 이러한 자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수용하고 조화롭게 조율하려는 의지를 표현한다.
"외딴섬은 언제나 어리둥절하다"는 고립된 섬의 혼란스러움을 묘사하며, 이는 시인의 내면적 상태나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외딴섬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이 겪는 고독과 혼란을 나타내며, 그 속에서의 자아 탐색과 성장을 암시한다.
"봄을 끌고 오는 모터 소리, 이려니 해도 구름에 실려 오다 좌르르 내려앉으면"은 봄을 맞이하는 순간을 역동적으로 그린다.
모터 소리와 구름에 실려 오는 봄의 이미지는 변화와 생동감을 나타내며, 이는 시인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암시한다.
마지막 행 "꽃마리, 봄맞이꽃 구름 떼로 일어서겠지"는 봄의 도래와 함께 피어나는 꽃들을 묘사하며, 이는 시의 끝을 장식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인은 이를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내면적 성장을 강조한다.
'조율'은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내면적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의 조화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한연희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섬세하게 조율하며, 그 속에서 나타나는 감정적 깊이를 통해 독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시의 각 행은 고유의 이미지와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가치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조율'은 인간과 자연, 그 사이의 조화로운 삶을 탐구하며, 시인의 독특한 언어적 감각과 철학적 깊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