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초 시인의 그 여자의 아침을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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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아침
시인 안혜초
시를 쓰는
그 여자의 아침은
새벽 다섯 시 반쯤이나
오후 두어 시에도
오고
자정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오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도
오고
밤을 쓸다가도
온다
하루에 두 번 세 번
걸쳐서도 오고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더러는 보름이 지나도 마주칠 듯 마주칠 듯
오지 않다가
그렇게
밤밤 낮낮
앓고 또 앓다가
드디어 장마 개이듯
쾌청한 하늘 드높이
온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
저 빛나는 아침 햇살
정지했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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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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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초 시인은 현대 한국 시단에서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시인으로, 그녀의 시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감정과 철학을 탐구한다.
시인의 삶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술적 영감을 찾고 그것을 시어로 승화시키는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시에서 드러나는 아침은 단순히 하루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세계에서 경험되는 다양한 감정의 순간들을 상징한다.
따라서 시 속 '아침'은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시인의 창작과 성찰의 결정적 순간을 가리킨다.
"시를 쓰는"
이는 주어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시인의 존재를 강조한다.
여기서 시 쓰기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본질적인 행위이다. 이 행은 시 전체의 문을 열며, 이후 펼쳐질 감정의 흐름에 대한 예고와도 같다.
"그 여자의 아침은
새벽 다섯 시 반쯤이나
오후 두어 시에도
오고"
시인의 아침이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언제든 찾아오는, 일정하지 않은 개념임을 암시한다. 아침은 일반적으로 하루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아침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창작과 깨달음의 순간을 뜻한다. 이는 시인이 전통적인 시간 개념에서 벗어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예술가적 삶을 사는 것을 보여준다.
"자정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오기도 한다"
자연의 소소한 변화가 시인에게 새로운 시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상징한다. 자정은 하루의 끝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는 그리움이나 소멸을 상징하면서도,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연결을 드러낸다.
"길을 걷다가도
오고
밤을 쓸다가도
온다"
시적 영감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순간을 표현한다. 길을 걷는 행위는 일상적이고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 시인은 특별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이는 창작의 순간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구속되지 않음을 나타내며, 시인의 삶이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루에 두 번 세 번
걸쳐서도 오고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더러는 보름이 지나도 마주칠 듯
마주칠 듯
오지 않다가"
아침이라는 순간이 얼마나 예측할 수 없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창작의 과정이 때로는 매우 빈번하게, 때로는 오랫동안 침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이 마주하는 '아침'은 자신의 감정의 흐름과 내면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밤밤 낮낮
앓고 또 앓다가
드디어 장마 개이듯
쾌청한 하늘 드높이
온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
오랜 고통과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해방의 순간을 상징한다. '장마 개이듯'은 긴 어둠과 침묵의 시간을 지나 밝은 빛이 드러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시인의 창작 과정이 고통과 싸우는 과정이며, 그 끝에 찾아오는 성취와 환희를 드러낸다.
"저 빛나는 아침 햇살
정지했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아침이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정체된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원동력임을 나타낸다. 이는 시인에게 아침이 단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창작의 순간이자 내면의 갱신을 의미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안혜초 시인의 시는 고요한 자연의 소리와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하는 섬세한 시각을 보여준다. 그녀의 시어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과 언어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며,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시어로 형상화한다.
이 시의 주제는 고통과 기다림과 그 끝에 오는 환희와 창조의 순간이다. 시인의 독창적인 언어 사용과 상징적 표현은 그녀의 철학적 깊이를 잘 드러내며,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와 인간적 통찰을 보여준다.
시의 유기적인 흐름은 독자로 시인이 경험하는 감정을 함께 느끼게 하며, 독창적이고 강렬한 시적 체험을 제공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