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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의 '꿈속의 혜초'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꿈속의 혜초



시인 주광일






꿈속에서 나는 만났네. 나 살아생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니 만날 수 없었던 혜초*스님을.
그분은 겉보기에는 구도자 같지 않았네. 모래바람을 이불처럼 덮어쓴 채 걷고 걷다가 끝내 처참하게 지쳐버린 방랑자 같았을 뿐이었네.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분의 눈을 보았네.
그분의 눈은 깊은 호수처럼, 아니 은하수 너머 저 멀리서 외롭게 빛나는 별처럼 늘 한결같은 자비와 사랑의 숨결을 발산하고 있었네.
나는 그분의 말씀은 한 마디도 듣지 못했으나, 그래도 나는 목마르지 않았네.
정말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었네.




*혜초(704-787)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이다. 천축국(오늘날 인도)을 갔다 와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은 현대 한국 문단에서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시적 세계를 구축해 온 인물이다.
그의 시는 인간 내면의 본질적 고뇌와 구도자의 길을 걷는 이들의 심정을 투영하면서, 독자들에게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개인적 체험과 철학적 사유가 융합된 형태로,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내적 성찰과 인간애는 독자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번 시 "꿈속의 혜초" 역시 이러한 그의 시적 세계의 연장선에서, 그가 품고 있는 인간적 가치와 구도의 길을 향한 깊은 애정이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혜초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내적 방랑과 구도의 길을 투영하며, 독자들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노정路程에 동참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꿈속에서 나는 만났네. 나 살아생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니 만날 수 없었던 혜초 스님을."

이 첫 행은 화자가 꿈속에서 만난 '혜초 스님'을 중심으로 시가 전개될 것을 암시한다. '나 살아생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니 만날 수 없었던'이라는 표현을 통해 화자는 실제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존재를 꿈속에서 만남으로써, 꿈이란 공간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혜초 스님은 역사적으로 천축국을 여행하며 불교의 진리를 탐구했던 인물로, 화자는 그를 통해 자신의 구도자적 갈망과 내면의 방황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분은 겉보기에는 구도자 같지 않았네. 모래바람을 이불처럼 덮어쓴 채 걷고 걷다가 끝내 처참하게 지쳐버린 방랑자 같았을 뿐이었네."

이 행에서는 혜초 스님의 외양이 구도자의 전형적인 모습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래바람을 이불처럼 덮어쓴 채 걷고 걷다가'라는 구절은 고된 방랑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끝내 처참하게 지쳐버린 방랑자'라는 표현은 그 고난의 여정을 강조한다.
이는 곧 혜초 스님의 구도 여정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이를 통해 혜초 스님을 단순한 구도자가 아닌, 삶의 고난을 온몸으로 겪어낸 인간적인 존재로 형상화한다.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네."

여기서 '어리둥절할 뿐이었네'라는 표현은 화자가 혜초 스님의 예기치 않은 모습에 놀라움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또한 화자가 현실 속에서 혜초 스님의 삶과 정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혜초의 구도와 방황이 단순히 신성한 것이 아닌, 인간적인 고통과 노력을 내포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분의 눈을 보았네."

이 구절은 시의 전환점이 된다. 혜초 스님의 눈을 본 순간, 화자는 단순한 방랑자로 보였던 그가 사실은 깊은 통찰과 사랑을 지닌 구도자임을 깨닫는다. 눈은 흔히 영혼의 창이라고 불리며,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혜초 스님의 눈을 통해 화자는 그의 내면에 숨겨진 깊이를 발견하고, 그 안에 담긴 자비와 사랑의 메시지를 읽어낸다.

"그분의 눈은 깊은 호수처럼, 아니 은하수 너머 저 멀리서 외롭게 빛나는 별처럼 늘 한결같은 자비와 사랑의 숨결을 발산하고 있었네."

이 구절은 혜초 스님의 눈을 '깊은 호수'나 '은하수 너머 저 멀리서 외롭게 빛나는 별'로 비유하며, 그의 눈이 발산하는 자비와 사랑의 힘을 강조한다.
이러한 비유는 혜초의 구도적 여정이 단순한 방랑이 아닌, 우주적인 차원의 깨달음에 도달한 것임을 암시한다. 주광일 시인은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혜초 스님의 존재가 가진 깊이와 넓이를 시적으로 표현하며, 그의 구도적 가치관을 부각한다.

"나는 그분의 말씀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으나, 그래도 나는 목마르지 않았네."

여기서 화자는 혜초 스님의 말을 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목마르지 않았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물리적인 갈증이 아닌, 영적인 충만함을 뜻한다. 혜초 스님의 존재 자체가 화자에게 커다란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음을 시사하며,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가르침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는 곧 혜초 스님의 가르침이 언어적 전달을 넘어서, 존재의 본질에서 오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말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었네."

마지막 행은 화자가 혜초 스님과의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강한 바람을 표현한다.
이는 혜초 스님과의 만남이 단순한 꿈의 경험을 넘어서, 깊은 영적 교감과 깨달음을 안겨준 경험임을 암시한다. 이 꿈은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하는 휴식처이자, 화자가 계속해서 추구하고 싶은 이상적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주광일 시인의 시 "꿈속의 혜초"는 혜초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인간의 내적 방황과 구도의 길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시는 혜초 스님의 모습을 단순히 성스러운 구도자로 그리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방황을 중심으로 그려내면서 독자에게 보다 친근하고 깊은 감정적 울림을 선사한다. 또한, 꿈이라는 초현실적 공간에서의 만남을 통해, 시인은 현실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인간의 영원한 갈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시의 이미지들은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감각적이다. 모래바람, 깊은 호수, 은하수 너머의 별 등은 혜초 스님의 여정과 그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들로 작용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독자들에게 혜초 스님의 구도적 여정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도록 한다.

주광일 시인의 시적 철학은 이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인간 존재의 고뇌와 방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과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혜초 스님의 눈에서 발산되는 자비와 사랑은 주광일 시인이 지향하는 인간적 가치와 철학을 대변한다.

요컨대, "꿈속의 혜초"는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의 내적 깊이를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안하는 시다.
주광일 시인은 혜초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구도적 갈망과 철학적 성찰을 섬세하게 풀어내면서, 독자들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면의 진실을 찾도록 권유하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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