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희 시인의 '거울방'을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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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방
시인 文希 한연희
여러 번 고비를 넘겼어
오늘이었다가 어제가 되고
내일이었다가 오늘이 되지
말라비틀어졌다가
덧들이는 투명한 거울방
거기엔 번번이 그녀가 서 있지
사방에 둘러쳐진 거울마다
울음이 꽉 찼다가 터져야
에이스펙트럼으로 무지개가 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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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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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희 시인의 시는 그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삶은 여러 번의 고비를 넘으며 계속해서 변모해 왔고, 이러한 경험이 그의 작품에 깊이 배어 있다.
시인은 고통과 회복,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자기 인식과 성찰을 통해 시적 표현을 구체화했다.
‘거울방’이라는 시는 그러한 시인의 삶의 축적과 경험이 응축된 작품으로, 그의 개인적 고통과 재탄생의 과정을 시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시는 운문적 형태와 언어의 선택, 감각적인 이미지의 배치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여러 번 고비를 넘겼어"는 시인이 겪어온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고비'라는 단어는 극복하기 힘든 상황을 상징하며, 이를 ‘여러 번’이라는 수식어로 강조함으로써 시인이 경험한 반복적인 고통과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행은 시의 도입부로서, 시인의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지점을 암시하며 독자를 시의 세계로 이끈다.
"오늘이었다가 어제가 되고 / 내일이었다가 오늘이 되지"는 시간의 순환과 그 속에서 무상함을 느끼는 인간의 본질적인 경험을 나타낸다.
'오늘', '어제', '내일'의 연속적인 흐름은 시인의 내면에서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뒤섞이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고통, 그리고 미래의 희망이 서로 맞물려 있는 상태를 나타내며, 시인은 이를 통해 시간의 비현실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말라비틀어졌다가 / 덧들이는 투명한 거울방"은
시인이 처한 현실의 고통스러운 상태와 그 속에서의 내적 반추反芻를 의미한다. '말라비틀어졌다가'라는 표현은 마치 고사된 식물처럼 삶의 활기를 잃고 메말라 있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곧이어 등장하는 '덧들이는 투명한 거울방'은 내적 성찰과 재탄생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거울방'은 자신을 비추어보는 공간으로, 시인은 그곳에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며 새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거기엔 번번이 그녀가 서 있지"는 거울방 안에서 시인이 매번 자신과 마주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시인의 또 다른 자아이거나, 혹은 시인이 거울 속에서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일 수도 있다.
이 행은 시적 자아와 시인의 내면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암시하며, 시인은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재평가하고 재해석하게 된다.
"사방에 둘러쳐진 거울마다 / 울음이 꽉 찼다가 터져야"는
감정의 고조와 해소를 상징한다.
'울음'은 시인의 내면의 고통과 슬픔을 상징하며, 그것이 '터져야' 한다는 것은 억압된 감정이 마침내 분출되어야 하는 필연성을 말해준다.
이 과정은 시적 해방의 순간이며, 시인은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고 해방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행, "에이스펙트럼으로 무지개가 뜨지"는 감정의 해소 후에 찾아오는 화해와 희망의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에이스펙트럼'은 여러 가지 색의 조화를 의미하며, 이는 고통과 슬픔이 해소된 후에 찾아오는 새로운 가능성과 재탄생의 순간을 암시한다. 무지개는 고통의 끝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화해의 상징으로, 시인은 이를 통해 모든 고통이 결국엔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요컨대, 이 시는 한연희 시인이 자신의 내적 갈등과 고통을 고스란히 반영한 시적 표현으로, 고통과 회복, 그리고 재탄생의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언급한 '카타르시스'의 개념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독자가 시를 읽으며 자신의 감정을 정화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또한, 시인은 거울과 무지개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연희 시인의 ‘거울방’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 희망과 그 속에서의 자기 성찰을 탐구한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