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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기 시인의 '가을 수수'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가을 수수






시인 청강 허태기





무거운 태양
잔뜩 짊어지고

상기된 얼굴로
가을 중턱을 넘는

수숫대의 허리가
꺾어질 듯 휘청인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강 허태기 시인은 깊이 있는 사유와 자연과 인간의 내밀한 상관관계를 시적으로 풀어내는 시인이다.
그의 삶은 자연 속에서 관찰자로서 존재하며, 자신의 체험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허태기 시인의 시는 대개 자연의 이미지와 인간의 감정을 교묘하게 엮어내며,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것들로부터 큰 진리를 도출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시에는 감각적인 묘사와 깊은 성찰이 녹아있어 독자들에게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며, 인생의 다양한 층위層位를 탐구하도록 이끈다.

"무거운 태양"에서는 ‘태양’이라는 이미지가 중심이 된다. 태양은 일반적으로 생명력을 상징하지만, 이 시에서는 ‘무거운’이라는 형용사를 통해 중압감과 부담감을 함께 나타낸다. 태양의 무게는 자연의 법칙처럼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중압감과도 연결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느끼는 생의 무게, 혹은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마주하는 현실의 무게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잔뜩 짊어지고"는 앞선 '무거운 태양'을 수식하며 시각적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짊어진다는 동사는 인간의 고통과 인내를 연상케 하며, 수수대가 짊어진 무게는 태양만이 아닌 삶의 무게를 상징한다.
이 구절은 허태기 시인이 바라본 인생의 한 단면을 자연의 형상을 통해 표현하는 것으로, 시인이 겪은 고난과 극복의 의지를 담고 있다.

"상기된 얼굴로"는 ‘상기된’이라는 단어를 통해 수수의 감정적 상태를 인격화한다.
상기된 얼굴은 열기와 무게에 시달리면서도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강인함을 드러낸다.
이 표현은 시인이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며 그 속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결단을 읽어내는 시적 감수성을 반영한다.

"가을 중턱을 넘는"은 계절의 중반부를 지나는 수수대의 모습을 묘사하며, 가을의 시기를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인간의 삶의 한 과정 혹은 고비를 나타낸다.
이는 시인이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삶을 발견하고, 그 흐름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는 순간이다. 가을은 성숙과 결실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쇠퇴와 끝맺음을 향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행은 이러한 모순된 의미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며, 인생의 중반부에 이른 자아의 갈등과 고뇌를 반영한다.

"수숫대의 허리가"는 수숫대를 시적 화자로 설정하여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시인의 표현 방식을 보여준다. 허리가 꺾일 듯 휘청이는 모습은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버티려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허태기 시인이 평소 느끼는 인간의 존엄성과 굴하지 않는 생명력을 반영한 것이다.

"꺾어질 듯 휘청인다."는 수수대가 버티고 있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꺾어질 듯 휘청인다’는 표현은 바로 앞에서 무게를 견디고 있는 모습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삶의 위기와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강인함을 강조한다. 이는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며, 동시에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 연대를 암시한다.

이 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상생을 노래하며, 고통과 인내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허태기 시인은 간결한 언어와 이미지로 자연의 일상적 요소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시적 언어는 단순한 묘사가 아닌 심오한 철학적 사고를 담고 있으며, 독자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깨닫게 된다.

시의 감성적 측면에서 보면, 허태기 시인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을 넘어, 그 속에 내재된 삶의 진리를 포착하려는 시적 시도를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 고통과 희망을 오가며 읽는 이로 깊은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감성은 독자에게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며, 시인의 철학적 깊이를 체험하게 한다.
그의 시는 한편으로는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복잡한 내적 구조를 지닌다.

요컨대, 허태기 시인의 "가을 수수"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와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허태기 시인의 시적 세계관과 철학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사유는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며, 그의 시적 언어는 그만의 독창적이고 철학적인 미감을 느끼게 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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