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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인의 '울산바위'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울산바위



시인 배선희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 때
거대한 울산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이곳에 눌러 앉았다더라.

마고선녀가 승천할 때
비선대를 남겨두고 갔으니
설악이 하늘나라든 지상에서든
뒤짐은 아니었나니.

진덕여왕 시절, 자장율사가
이곳에 절터를 잡고
신통제일의 석간수를 남기셨나니
그 한 모금에 어찌 갈증이 남으랴!

돌로 다듬어 불상을 모신들
바위와 사찰이 서로 보듬은 형상
어찌 갈라놓으랴.

운무가 산천 휘감아 승무를 추고 계곡마다 가락을 밟아 흘러
설악 단풍은 옮길 곳이 없네.

자연이 손을 뻗어
한 쪽의 수채화 그리는데
그 속을 오가는 풍경과 사람들
어디로 가다 멈추었는가.

수시로 장을 넘기는
그림 속을 비집고 내려와
척산 온천에 온몸을 담그니
열린 문마다 설악절경 걸려 있다

금강송 숲길을 타고 내려온
그윽한 솔향 이불로 덮으니
꿈엔들 더 갈 곳은 없고
여기저기서 오가든 이들 예서 잡더니
울산바위만 우뚝 멈추었으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배선희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철학적 사유를 깊이 탐구하는 시인이다.
그녀의 시 세계는 자연을 단순히 대상화하지 않고, 그 안에 내재한 생명력과 자연의 소리, 빛, 색감을 정교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내면과 연결 짓는다.
'울산바위'라는 시에서 배선희는 울산바위와 그 주변의 풍경을 단순히 지리적, 물리적 묘사로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얽힌 역사와 신화, 그리고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경험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그녀의 삶은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심과 철학적 성찰에서 비롯된 시적 언어로 가득하며, 이 시 역시 그녀의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가 잘 녹아들어 있다.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 때 / 거대한 울산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이곳에 눌러앉았다더라."

첫 행에서는 금강산을 창조한 조물주가 등장하고, 울산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멈춰 선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자연의 거대한 힘과 신비로움을 상징하며, 자연물이 단순한 지리적 요소가 아니라 영적, 신화적 존재로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울산바위가 ‘눌러앉았다’는 표현은 인간의 역사와 신화 속에서 자연이 하나의 주체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고선녀가 승천할 때 / 비선대를 남겨두고 갔으니 / 설악이 하늘나라든 지상에서든 / 뒤짐은 아니었나니."

여기서는 설악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마고선녀라는 신화적 존재와 연결하고 있다. 선녀가 남긴 비선대는 하늘나라와 지상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자연의 경관이 하늘의 신성한 세계와 동등하게 대우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간이 자연 속에서 경험하는 초월적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진덕여왕 시절, 자장율사가 / 이곳에 절터를 잡고 / 신통제일의 석간수를 남기셨나니 / 그 한 모금에 어찌 갈증이 남으랴!"

이 부분에서는 역사적 인물인 자장율사와 그가 남긴 석간수를 언급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만남을 그려내고 있다.
신통제일의 석간수는 자연의 정수를 상징하며, 그 물 한 모금이 인간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할 정도로 완전하고 신성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인간이 자연과 조우하면서 느끼는 치유의 힘과 영적인 깨달음을 상징한다.

"돌로 다듬어 불상을 모신들 / 바위와 사찰이 서로 보듬은 형상 / 어찌 갈라놓으랴."

이 구절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인공물을 세우더라도, 그 자연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나타낸다. 바위와 사찰이 ‘서로 보듬은 형상’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노력과 자연의 원초적 상태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인간의 창조 행위가 자연의 일부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운무가 산천 휘감아 승무를 추고 계곡마다 가락을 밟아 흘러 / 설악 단풍은 옮길 곳이 없네."

여기서 운무가 춤을 추고, 계곡마다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자연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눈에 신비한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설악 단풍은 옮길 곳이 없네'라는 표현은 그 아름다움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완전한 것을 나타낸다.

"자연이 손을 뻗어 / 한 쪽의 수채화 그리는데 / 그 속을 오가는 풍경과 사람들 / 어디로 가다 멈추었는가."

자연이 마치 인간처럼 의지를 지닌 존재처럼 묘사되며, ‘수채화’라는 예술적 비유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술 작품에 비유한다. 사람들은 이 수채화 속을 오가며 삶을 살아가고, 자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
이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발견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시로 장을 넘기는 / 그림 속을 비집고 내려와 / 척산 온천에 온몸을 담그니 / 열린 문마다 설악절경 걸려 있다."

이 구절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마치 책의 페이지처럼 계속 펼쳐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그림 속을 비집고 내려온다는 표현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자연의 무한한 경이로움을 표현한다. 척산 온천에 몸을 담그며 설악의 절경을 마주하는 모습은 자연 속에서의 휴식과 치유를 암시한다.

"금강송 숲길을 타고 내려온 / 그윽한 솔향 이불로 덮으니 / 꿈엔들 더 갈 곳은 없고 / 여기저기서 오가든 이들 예서 잡더니 / 울산바위만 우뚝 멈추었으랴!"

마지막 행에서는 자연의 향기와 함께하는 깊은 평화로움을 묘사한다. ‘그윽한 솔향 이불’이라는 표현은 자연의 포근함을 느끼게 하며, 그 안에서 꿈조차 더 나아갈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만족을 나타낸다.
울산바위는 이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고유한 존재로서, 자연의 영원성과 변치 않는 본질을 상징한다.

배선희의 시 ‘울산바위’는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내재된 역사와 신화,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다층적으로 풀어낸다.
그녀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것이 인간에게 주는 심오한 경험을 시각적 이미지와 감성적 언어로 재구성하며, 시 전반에 걸쳐 풍부한 상징과 은유를 사용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시인은 자연을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상상하며, 그 속에서 인간이 발견할 수 있는 치유와 깨달음을 그려낸다.
이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경외하는 동시에, 그 안에 내재된 철학적 성찰을 탐구하며, 자연과 인간이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배선희의 시는 독특한 언어로 독자에게 자연과 삶의 본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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