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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인의 '대나무나라'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대나무나라


시인 배선희




비 내리는 담양 죽녹원
대나부 잎 사이 빗방울이 비집고 들어온다
톡톡 튀는 빗방울에 영롱한 보석들이

또륵 또르르 구르고 있다
서로 부딪치는 잎새들이

감미로운 몸부림의 음계를 이어
알 수 없는 언어로 서로 주고받는 것은 아마도 대나무나라의 언어이겠지!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지만
인간 언어에 길들어버린 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들려주는 아름다운 대나무나라의 이야기도
신비로운 대나무나라의 노래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으로만 느껴야 하다니

대나무나라의 언어를 가르쳐주는 곳은 없을까?
사르 사르락~~~~
대나무들이 주고받는 예쁜 이야기들을 정녕 엿들으려는 이들은 외계인이 아닐까?

언젠가는 나와 자연, 그리고 대나무가
한 발짝씩 가까워질 즈음에
나도 대나무 소리도 어울려 몸부림치겠지
생명의 언어는 하나일 테니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배선희 시인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생명에 대한 깊은 사유와 감성을 담아내는 시인이다. 그의 시 세계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 내면의 순수성을 되찾고자 하는 소망이 강하게 드러나며, 이러한 철학적 사고는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난다. 담양 죽녹원의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이 시 또한 자연 속에서 얻은 영감과 감흥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소통과 화합을 노래하고 있다. 배선희 시인은 빗방울과 대나무 잎 사이에서 벌어지는 섬세한 순간들을 포착하여, 이를 통해 인간이 잊고 지낸 자연의 언어와 교감을 되새기고 있다.

첫 행에서 "비 내리는 담양 죽녹원"은 시의 배경을 설정하면서 동시에 시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든다. 죽녹원의 대나무 숲에 비가 내리는 장면은 청량하면서도 신비로운 이미지로 시각적, 청각적 감각을 자극한다. 이는 곧바로 "대나무 잎 사이 빗방울이 비집고 들어온다"라는 구절로 이어지며, 빗방울이 대나무 잎 사이로 스며드는 생생한 장면을 그려낸다. "비집고"라는 동사는 빗방울의 작은 움직임에도 활력을 부여하며, 자연의 역동적인 면모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어지는 "톡톡 튀는 빗방울에 영롱한 보석들이 또륵 또르르 구르고 있다"라는 구절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석에 비유하여 더욱 생동감 있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이는 자연의 작은 요소마저도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감수성을 드러내며, 독자에게 자연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다음으로 "서로 부딪치는 잎새들이 감미로운 몸부림의 음계를 이어"라는 표현에서는 대나무 잎들이 바람과 비에 의해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음악적 음계에 비유하고 있다. "감미로운 몸부림"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소리를 넘어, 자연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리듬과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서로 주고받는 것은 아마도 대나무나라의 언어이겠지!"라는 구절에서는 자연이 가진 고유의 언어와 소통 방식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롭고 고유한 소통의 세계가 자연 속에 존재함을 암시하며, 독자로 하여금 그 언어를 배우고 싶게 만드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지만 인간 언어에 길들어버린 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대목에서는 자연과의 소통이 단절된 인간의 현실을 드러낸다. 시인은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고 싶은 갈망을 표출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언어와 문명에 익숙해져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자각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소통 부재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를 강조하며, 시의 정서를 고조시킨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들려주는 아름다운 대나무나라의 이야기도 신비로운 대나무나라의 노래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으로만 느껴야 하다니"는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자연의 소리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을 지적한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으로 묘사된 이 구절은 자연의 언어가 인간에게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암시하며, 자연과의 교감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대나무나라의 언어를 가르쳐주는 곳은 없을까?"는 시인의 소망을 담고 있다. 대나무의 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시인의 염원은 자연과의 진정한 교감과 소통을 갈망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사르 사르락~~~~ 대나무들이 주고받는 예쁜 이야기들을 정녕 엿들으려는 이들은 외계인이 아닐까?"라는 구절은 대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상상하며, 그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시도의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자연과의 소통이 얼마나 신비롭고 어려운 일인가를 시사하며, 동시에 그 신비를 동경하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젠가는 나와 자연, 그리고 대나무가 한 발짝씩 가까워질 즈음에 나도 대나무 소리도 어울려 몸부림치겠지 생명의 언어는 하나일 테니"라는 구절은 시인의 희망을 담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다시금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며, 그 소통의 순간을 꿈꾸는 시인의 낙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생명의 언어는 하나일 테니"라는 마지막 구절은 모든 생명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언어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하며, 인간과 자연의 근본적인 연결성과 조화를 강조한다.

배선희 시인의 이 시는 자연의 소리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와 인간과 자연의 소통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결합하여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자연과의 소통이 단절된 현대인의 삶을 반성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자연과 다시 연결되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시의 언어는 섬세하고 풍부하며, 독자로 자연의 소리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이러한 표현적 특징은 시인의 철학과 가치관을 반영하며, 독자에게 자연과의 조화로운 교감을 촉구한다. 이 시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시인의 독창적인 시각과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생명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 글을 읽은
독자는
똑 같이 그곳을 여행했다.

그는 비가 와서
여행을 못하고
피를 피해
있었다.

헌데
배선희 시인은 우산을 쓰긴 했지만
비를 맞으면서
대나무를 완상한다.

비바람 속에 흔들리는
빗소리를
속삭이는 언어로 표현하고,
이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올린 글이다.



배선희 시인에게



담양의 죽녹원에서 비가 내리던 날, 나는 그곳에 있었다. 빗줄기는 굵고 무거웠고, 여행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거칠게 몰아쳤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나처럼 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가거나,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그저 비를 피해 숨을 곳을 찾으며 여행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채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곳에서 배선희 시인을 떠올리게 된 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놓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배선희 시인은 나와 같은 날, 같은 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여행은 나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비를 피하며 대나무 숲의 그림 같은 풍경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반면, 배선희 시인은 우산 아래에서 대나무와 빗방울이 함께 연주하는 교향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비바람 속에서 대나무의 흔들림과 빗소리 속에 담긴 자연의 언어를 느끼고 있었다. 비에 젖은 대나무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마치 대나무나라의 신비로운 언어로 표현하고, 그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나는 그날의 비를 단지 불편함과 짜증으로만 기억했지만, 그녀는 그 비를 자연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펼쳐든 채로 비를 막으려 애썼고, 그저 빗방울이 얼굴에 닿지 않기를 바라며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배선희 시인은 우산을 쓰긴 했지만, 그 비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와 대나무가 빚어내는 풍경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대나무 잎들이 빗방울에 부딪혀 내는 속삭임을 들으며, 자연과의 교감을 즐기고 있었다.

대나무 숲에 내리는 빗소리는 자연의 숨소리이자, 고요한 대화의 일부분이었다. 그 소리는 사람의 언어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떨림이었고, 자연의 리듬이었다. 하지만 배선희 시인은 그 리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리듬 안에서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을 단지 비 오는 날의 여정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기회로 삼았다. 그녀는 비와 대나무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감미로운 몸부림의 음계"로, 그리고 "대나무나라의 언어"로 받아들였다. 그 속삭임은 인간의 언어에 길들여진 우리가 잊고 지낸, 자연의 본질적인 소통의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배선희 시인이 비 오는 날의 대나무 숲을 걸으며 느꼈던 그 깊고 섬세한 감성을, 그리고 그녀가 자연과 교감하며 나누었던 그 대화를 상상해 본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날의 비를 피하기만 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지를 깨달았다. 비는 단지 우리의 여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나무와 자연이 함께 속삭이는 노래였고, 그들의 대화였으며, 우리가 잠시 멈추어 귀 기울여야 할 소중한 순간이었다.

배선희 시인은 우산을 쓰고도 비를 온전히 맞으며, 그 빗속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이루어냈다. 그녀는 비를 막기 위해 우산을 든 것이 아니라, 그 비와 대나무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야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날 비를 피해 대나무 숲의 소리를 외면했지만, 그녀는 그 비를 맞으며 대나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글은 그저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깊은 교감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자연은 때로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지만,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언어를 내려놓고 그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배선희 시인의 글은 나에게 그러한 교감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그녀가 담양 죽녹원에서 비를 맞으며 들은 대나무와 빗소리의 이야기는 그저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례였다.

이제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아갈 것이다. 이번에는 비를 피하려고 하지 않고, 그 비를 맞으며 대나무와 비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의 대나무 숲은 더 이상 나에게는 불편한 여정이 아닌, 배선희 시인이 경험한 그 신비롭고 감동적인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그녀의 글은 나에게 자연과의 새로운 소통의 길을 열어주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_
부끄러운 마음으로
배선희 시인에게 올립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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