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삶'을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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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시인 주광일
끈질기게 뜨거웠던 여름이
계절의 끝은 아니었듯이
죽음도 삶의 끝이 아니고
뜻밖의 파국은 아닐세
가을길 혼자 걸으며
거룩한 겨울을 기다리며
하늘에 뜬 구름 한 조각
가슴 가득히 담았네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
영원 향한 나들이
가까워진 무덤 찾아가는 길
발걸음 가벼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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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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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깊은 사유와 철학적 성찰을 드러내는 시인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시는 단순한 형식 속에서도 깊은 의미를 품고 있으며, 독자에게 끊임없이 성찰을 요구한다.
특히, 이번 시 '삶'에서는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이라는 계절적 변화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시인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시인은 계절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이듯, 죽음 역시 삶의 자연스러운 연속임을 강조하며, 우리에게 일상의 순간을 보다 성찰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끈질기게 뜨거웠던 여름이 / 계절의 끝은 아니었듯이"는
한 시기의 강렬함이 끝이 아님을 암시한다. 이는 마치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일깨우는 동시에, 그 끝이 또 다른 시작임을 암시한다. 여름이라는 강렬한 계절은 삶의 뜨거운 순간들을 상징하며, 그 끝이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죽음도 삶의 끝이 아니고 / 뜻밖의 파국은 아닐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며, 죽음을 부정적인 결말이 아닌 자연스러운 연속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철학을 반영한다. 시인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비극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일부로서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더 깊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죽음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시인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가을길 혼자 걸으며 / 거룩한 겨울을 기다리며"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통해 인생의 황혼기와 겨울의 초입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로, 삶의 결실을 맺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시기 혼자 걸으며, 겨울, 즉 삶의 끝자락을 고요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기다린다. 이는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신성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하늘에 뜬 구름 한 조각 / 가슴 가득히 담았네"는
시인의 감성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구름은 자유로움과 변화, 그리고 영원한 이동성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 구름을 가슴에 담았다고 표현함으로써, 그가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또한 이는 시인의 시각에서 일상의 소소한 순간조차도 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 / 영원 향한 나들이"는
죽음에 대한 시인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그는 죽음을 무겁고 두려운 것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오히려 영원으로 나아가는 여정으로 받아들인다. "가벼운 차림"이라는 표현은 육체의 무게를 덜어낸 상태, 혹은 세속적인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영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가까워진 무덤 찾아가는 길 / 발걸음 가벼워지네"는
삶의 끝, 즉 죽음을 향해 다가가면서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표현한다. 이는 시인이 죽음을 삶의 또 다른 형태로 받아들이는 철학적 입장을 드러낸다. 죽음을 향한 여정이 무겁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쾌하고 가벼워진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무는 시인의 독특한 세계관을 나타낸다.
요컨대, 주광일 시인의 '삶'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철학적 사유와 감성적 깊이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시인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죽음마저도 삶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를 통해 독자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고, 보다 성찰적이고 평화로운 삶의 태도를 제안한다. 시는 간결한 언어 속에 복잡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 상징적 이미지와 철학적 깊이는 독자들에게 지속적인 여운을 남긴다. 시인의 이러한 독창적 시각과 표현 방식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성찰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시가 지닌 철학적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