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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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긴 성경책
김왕식
고향의 풍경 속에 서려져 있는, 나의 어린 시절 기억들은 아련한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고즈넉한 시골의 마을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동네 한가운데 자리한 우물가와 빨래터, 그곳은 마을 아낙들의 소통의 장이었다. 우리 동네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해서 동네 이름도 ‘고산리’다.
그야말로 하늘 아래 첫 동네다.
논보다는 밭이 많다.
그것도 비탈 밭이다. 논이 있어봤자 천수답이니, 영세농일 수밖에 없다. 가뭄이 들 때면 기우제를 지낸다. 동네 아낙들은 장독대, 부뚜막에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렸다.
그들의 기도는 숲과 들판을 가득 채우며, 사계절의 변화와 맞물려 자연의 풍요를 빌었다.
그곳에서는 고요한 바람이 그들의 노랫소리를 간직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물가 빨래터에서는 수원댁이라는 이방인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조용한 마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원댁, 그녀의 미소는 햇살처럼 밝았다.
입을 벌리면 찬송이 쏟아져 나오고, 그녀의 두 눈에는 무한한 희망이 반짝였다. 그녀는 예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믿음을 전파했다.
수원댁 가슴에 품긴 성경책은 우악스러운 아낙들 손에 이내 빼앗겨 진흙탕에 내팽겨졌다.
수원댁이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예수에 미쳐 실성한 예수쟁이었다.
저렇게 실실 웃고 다니니, 용하다고 소문난 돌배 엄마 불러 굿판을 벌여야 한다고들 혀를 끌끌 찼다.
시간이 흘렀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도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장독대와 부뚜막에 떡을 놓고 빌었던 아낙들은 이제 동네 사랑방에서 무릎을 꿇고 목청 높여 찬송을 불렀다. 3대째 가업 이은 무당, 돌배 엄마는 개구리 같은 큰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연신 외로 저었다. 혼잣말로 중얼댔다.
“참, 이상도 하지! 왜, 이곳만 오면 사지가 떨리고, 입이 말라 혀가 굳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기도가 안 먹힐까? “
언제부터인가 돌배엄마가 오색 천을 두르고 칼춤을 추었던 둔덕 위, 성황당이 있던 그 자리에 예배당이 세워졌다.
강대상 위에는, 몇 년 전 동네 아낙에게 찢긴 수원댁 성경이 가지런히 놓였다.
이 변화는 고향의 풍경에 새로운 색을 입히며, 마을 사람들의 삶에 다양성을 불어넣었다. 한편으론 전통과 자연을 담은 오랜 믿음이 변해가는 모습이 아쉬움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믿음이 가져온 밝은 빛과 희망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과거의 모습과 현재가 공존하는 이 고향에서 나는 묵묵히 사람들의 변화를 지켜본다. 고향의 흙냄새와 장독대에서의 기도, 그리고 사랑방에서의 찬송이 하나로 어우러져 나의 마음속에는 감동과 여운이 깊게 남는다.
샤머니즘의 땅에서 신앙의 씨앗이 뿌려져, 새로운 믿음의 나무가 우뚝 선 이곳에서, 그들의 삶과 믿음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계속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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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식 (wangsik59@naver.com)│
시인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서울 오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고, 대안학교 청람영재학교와 도서출판 '청람서루'를 설립ㆍ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