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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연어'를 청람 평하다

정호승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연어



시인 정호승






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리라
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리라
당신이 기다리는 강가의 갈대숲
젊은 나룻배 한 척 외로이 떠 있는
그 길이 아니면 떠나지 않으리라
산란을 마치고 죽은 어머니를 위해
내 비록 꽃상여 하나 마련해드리지 못했으나
난류의 숲길을 따라
강한 바다의 바람 소리를 헤치고
내 어머니처럼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머나먼 대륙의 강으로 길 떠나리라
견딜 수 없으면 기다릴 수 없으므로
기다릴 수 없으면 사랑할 수 없으므로
내 비록 배고픈 물고기들에게
온몸의 심장이 다 뜯길지라도
당신이 기다리는 강기슭
붉은 달이 뜨면 사람들이 가끔 찾아와
한 줌 재를 뿌리고 묵묵히 돌아가는
그곳에 다다라 눈물을 뿌리리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호승 시인은 한국 현대 시단에서 깊이 있는 감성과 서정성으로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중견 작가이다.
그의 시는 주로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며,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그리고 희망과 절망의 주제를 다룬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하면서도 명징한 언어로 진솔하게 표현되며, 깊은 사색과 인생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 시 '연어'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은 생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성찰과 고뇌를 시를 통해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그의 시는 삶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리라 / 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리라"

이 두 행은 시의 도입부로서 강한 의지와 결단을 담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의 방향과 선택에 있어 확고한 태도를 취하며, 단순한 길의 유무를 넘어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모습이다. 이 문장은 어떤 선택이든 신중하게 하겠다는 철학적 선언으로 읽힌다. 길은 곧 인생의 여정을 의미하며, 시인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강한 신념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길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을 상징한다.

"당신이 기다리는 강가의 갈대숲 / 젊은 나룻배 한 척 외로이 떠 있는 / 그 길이 아니면 떠나지 않으리라"

여기서 '당신'은 인생의 목표 혹은 이상향을 의미할 수 있다. 강가의 갈대숲과 외로운 나룻배는 고독한 여정을 상징하며, 시인은 그 길이 자신이 찾아야 할 길이 아니면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와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나룻배는 인생의 여정을 떠나는 자신을 상징하며, 외로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산란을 마치고 죽은 어머니를 위해 / 내 비록 꽃상여 하나 마련해드리지 못했으나"

이 부분은 시인의 개인적인 고백으로 읽힌다. 어머니의 죽음을 언급하며, 시인은 자신의 무력함과 아쉬움을 토로한다. 산란을 마친 후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는 연어의 생애와 맞물려, 생의 순환과 모성애를 상징한다. 이 행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담고 있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끼는 인간의 본질적 감정을 드러낸다.

"난류의 숲길을 따라 / 강한 바다의 바람 소리를 헤치고"

이 부분은 시인의 결단과 의지를 표현하는 장면이다. 난류는 생명의 역경과 시련을 상징하며, 시인은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강한 바다의 바람 소리를 헤친다는 표현은 인생의 거센 풍파를 헤쳐 나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다. 이는 시인의 도전 정신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내 어머니처럼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 머나먼 대륙의 강으로 길 떠나리라"

시인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난다고 선언한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어머니가 아닌, 삶의 지혜와 사랑을 상징하는 존재로서의 어머니를 의미한다. 시인은 이러한 어머니의 삶을 닮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며, 이는 삶의 여정에서 사랑과 헌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인의 철학을 반영한다.

"견딜 수 없으면 기다릴 수 없으므로 / 기다릴 수 없으면 사랑할 수 없으므로"

이 두 행은 인생의 본질에 대한 시인의 통찰을 담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기다려야 하고, 기다림이 없다면 사랑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사랑과 인내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보여주며, 삶에서 중요한 것은 견디고 기다리며 사랑하는 것이라는 시인의 믿음을 드러낸다.

"내 비록 배고픈 물고기들에게 / 온몸의 심장이 다 뜯길지라도"

시인은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표현한다. 여기서 배고픈 물고기들은 시련과 고난을 상징하며, 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각오가 되어 있다. 이는 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나타내며,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당신이 기다리는 강기슭 / 붉은 달이 뜨면 사람들이 가끔 찾아와 / 한 줌 재를 뿌리고 묵묵히 돌아가는 / 그곳에 다다라 눈물을 뿌리리라"

마지막 부분은 시인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장면을 묘사한다. 강기숲은 궁극적인 목적지나 이상향을 의미하며, 붉은 달과 한 줌의 재는 죽음과 삶의 순환을 상징한다. 시인은 그곳에 도달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겠다고 다짐한다. 이는 인간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이별과 상실, 그리고 그로 인한 슬픔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정호승의 시 '연어'는 인생의 여정과 그 속에서의 선택, 그리고 사랑과 희생의 가치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단순한 언어 속에 복잡한 감정과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삶의 본질을 되묻게 한다. 그의 시는 삶과 죽음, 고난과 희망, 사랑과 이별을 아우르며, 마치 연어가 생을 다해 거슬러 오르는 노정路程을 통해 생의 의미를 되새기듯, 우리에게도 삶의 가치와 방향을 찾도록 한다. 시의 각 행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인생의 깊은 통찰과 감성적 울림을 전달한다.
시인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는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준다.
이 시는 고유한 정호승 시인의 철학과 감성을 담고 있는 수작秀作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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