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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숲

배선희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전나무숲



시인 배선희




언제부터인가
각자 발을 내리고 서서
별을 따보겠다며 발돋움해 대는 전나무들
퍼득거리는 산새를 몰아
철 따라 산사음악회를 열고 있네.

하늘에서 솜방망이 폭탄이 쏟아지면
서로 얼굴을 기대어 묻고
해님에게 곁눈질로 손길을 요청하다가 회오리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주면 휴~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어
덮인 눈을 털어내고 있네

햇빛처럼 눈발이 빗질하는 전나무숲 쪼르르 달려가는 다람쥐 따라
땅 깊이 묻어놓았던 도토리 하나 캐내듯 한 감정 끄집어내어 까르르~~~~

보라!
자연이 자연스레 만들어 놓은 흔적들 어느 위인이 있어 이를 말리겠는가.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은
오늘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배선희 시인은 자연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찾고자 하는 시인이다. 그녀의 작품은 대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둔다. 특히 전나무숲을 소재로 한 이번 시에서 시인은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장엄한 순간과 인간이 그것을 바라보는 경외감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자연이 주는 순수하고 깨끗한 에너지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마음의 평화를 작품에 녹여내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시는 그녀가 자연을 관찰하면서 느낀 감정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으로, 시인의 삶 속에서 자연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첫 연에서는 전나무들이 "각자 발을 내리고 서서 별을 따보겠다며 발돋움해 대는"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서 전나무는 개체로서의 자아와 자연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존재로 비유되고 있다. '발을 내리고 서서'라는 표현은 전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동시에, 각자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별을 따보겠다며'라는 표현은 전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자라는 생명력을 상징하며,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꿈과 열망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어지는 시구에서 "퍼득거리는 산새를 몰아 철 따라 산사음악회를 열고 있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여기서 산새의 존재는 자연의 동적인 면을 나타내며, 철 따라 바뀌는 자연의 모습과 그 안에서 생겨나는 조화로운 소리를 표현한다. '산사음악회'는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들이 하나의 음악처럼 어우러지는 순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 동식물 모두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상징하며, 그 속에서 평화와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두 번째 연에서는 "하늘에서 솜방망이 폭탄이 쏟아지면"이라는 표현으로 눈이 내리는 광경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솜방망이 폭탄'이라는 역설적 표현은 눈의 부드러움과 동시에 폭발적인 양을 표현하며, 자연의 강렬한 힘을 상징한다.
이러한 순간에 "서로 얼굴을 기대어 묻고"라는 구절은 전나무들이 서로 의지하며 그 순간을 견뎌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과 연대감을 동시에 나타내는 부분이다.

이어 "해님에게 곁눈질로 손길을 요청하다가"라는 부분에서는 자연의 생명체들이 햇빛을 갈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는 생명에 대한 갈망과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강한 생명력을 의미하며, '곁눈질로'라는 표현을 통해 이러한 본능적 욕구가 다소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세 번째 연에서는 햇빛 속에서 눈발이 흩날리는 모습과 다람쥐가 뛰어다니는 장면을 묘사하며, "땅 깊이 묻어놓았던 도토리 하나 캐내듯 한 감정 끄집어내어 까르르~~~~"라는 구절로 감정의 해방을 표현한다.
여기서 도토리는 감정이나 기억을 의미하며,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의 기쁨과 해방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자연 속에서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자유롭게 해방되는 순간을 시각화하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자연이 만들어낸 흔적들이 드러나며, "어느 위인이 있어 이를 말리겠는가"라는 구절로 인간의 힘으로는 자연의 섭리를 막을 수 없음을 암시한다. 이 구절은 자연의 위대함과 그 자체로서의 완전함을 드러내며, 인간의 개입이 무의미함을 설파한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은 오늘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네"라는 마무리는 자연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그 자체로 완전함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컨대, 배선희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며, 자연이 지닌 고유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인간에게 주는 치유와 위로의 힘을 담백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사를 담아내며, 독자로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감각적 이미지와 언어의 정교함은 시인의 독창적인 시선과 철학을 드러내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영감과 감동을 깊이 체감하게 한다.





배선희 시인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에 시인님의 시 '전나무숲'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던 독자입니다. 사실 저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여러 번 걸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숲길을 걸을 때마다 나무들의 높고 푸른 자태와 청정한 공기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동안 그 숲을 지나치며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산책의 기분 좋은 여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깊은 사유나 특별한 감흥 없이 그저 '아, 좋구나' 하고 지나쳤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요.

그러던 중 시인님의 '전나무숲'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너무도 쉽게 지나쳐버렸던 전나무 숲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은 전나무 숲이 지닌 깊이를, 그 속에 담긴 자연의 질서와 조화로운 움직임을, 그리고 그 안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시어로 풀어내셨습니다. 같은 숲을 보았지만, 시인님은 그 숲을 살아 숨 쉬는 존재로,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마치 처음으로 월정사 전나무 숲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나무들이 별을 따기 위해 발돋움하며 하늘을 향해 자라는 모습, 산새들이 노래하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의 따뜻한 손길, 눈송이들이 폭탄처럼 쏟아져 내려 전나무들이 그 무게를 견뎌내는 장면이 시어 하나하나에 생생히 그려졌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통해 숲은 단지 나무와 길, 그리고 몇 마리의 새가 있는 공간이 아닌, 하나의 큰 생명체로 느껴졌습니다. 자연이 가진 무한한 힘과 아름다움을 시어로 재현한 시인님의 통찰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시인님의 시에서는 자연이 단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닌,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전나무들이 서로에게 얼굴을 기대며 의지하는 모습, 햇빛을 갈구하는 나무들의 손짓,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털어내는 눈송이들... 모든 것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순간 비로소 자연과 교감하는 시인의 시선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 숲을 거닐며 바라보던 제 눈과 마음이 얼마나 얕고 단편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전나무 숲은 그저 걷기 좋은 산책로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공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 하나하나가 하늘을 향해 발돋움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시인님이 시에서 표현하신 전나무 숲의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모습, 그 속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과 동시에 생명의 강렬함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 자연과 하나 되어 깊이 공감하는 시인의 시선이 만들어낸 것임을 느꼈습니다.

또한, 시를 읽으며 전나무 숲을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가슴에 품고, 전나무 숲을 거닐며 이전에 놓쳤던 그 숲의 소리와 움직임, 빛과 어둠의 조화를 새롭게 느끼고 싶습니다. 그곳에 다시 서게 된다면, 그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전나무들이 이제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눈이 덮인 가지들이 서로에게 기댄다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 같습니다.

시인님께서 시를 통해 전해주신 이 깨달음과 감동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교감하며 살아가는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인님의 시는 단지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자연과 어떻게 교감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해 줍니다. 앞으로도 시인님의 시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위로와 치유를 찾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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