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19. 2024
■
역사를 먹는다
김왕식
서울 종로구의 한적한 뒷골목을 걷다 보면, 바쁜 도시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난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단골이 끊이지 않는 작은 칼국수 집이 눈에 띈다.
이곳은 규모가 매우 협소해 앉은 사람들끼리 몸을 부딪치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작은 공간이지만, 그 작은 공간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과 사람들의 정겨운 이야기가 스며있다.
할머니가 처음 문을 연 이곳은 그녀의 며느리에게로 이어졌다. 세대를 거치며, 이 칼국수 집은 비록 외관은 작고 허름할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역사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진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맛집들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은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언가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해 온다.
우리가 지방을 여행하거나 외국을 방문할 때, 각 지역의 고유 음식을 맛보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새로운 음식이 우리의 입맛에 꼭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고소한 국물이나 독특한 향신료가 익숙하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하다.
우리는 그 음식을 마다하지 않고 먹는다.
그 음식을 먹는 순간, 우리는 그 지역의 문화를, 그리고 그 문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삶을 함께 경험하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의 삶을 한 입에 삼키는 것처럼.
이 칼국수 집의 음식도 그러하다.
엄격히 말하면, 주변에 새로 생긴 깔끔하고 현대적인 음식점들이 더 위생적이고 업그레이드된 메뉴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을 지켜온 이 칼국수 집을 찾는다.
왜 그럴까?
단순히 음식의 맛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그 음식을 통해 과거를, 그리고 그 과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먹고 있는 것이다.
음식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음식 속에는 그 음식을 만들고 전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그들의 노동, 정성, 그리고 사랑이 녹아든 그 한 그릇의 음식에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고, 며느리가 그 전통을 이어받아 같은 방식으로 칼국수를 만든다. 그 과정 속에서 세상은 빠르게 변했지만, 이 작은 가게는 그 변화에 굴하지 않고 고유의 방식과 맛을 지켜왔다.
그렇기에 이 집에서 칼국수를 먹는 것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음식 속에 담긴 시간의 흔적을, 그 역사와 문화를 함께 먹고 있는 것이다. 작은 가게의 허름한 외관은 그들의 긴 역사를 상징하고, 그 속에서 만든 음식은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맛볼 수 있게 해 준다.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고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기술의 발전으로 음식은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진다.
효율성과 위생이 아무리 중요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을 찾는다. 전통은 단순히 과거의 잔재가 아니다. 그것은 세월을 견뎌내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우리가 전통 음식을 선택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더 세련되고 깨끗한 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통 음식을 선택함으로써 그 음식 속에 스며있는 역사를 먹는 셈이다.
이 칼국수 집에서 한 그릇의 음식을 먹는 순간, 우리는 그 작은 그릇 속에 담긴 수많은 세월과 사람들의 삶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칼국수 면발 하나하나에 스며든 그들의 노동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 음식을 통해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들의 역사를 우리 안에 담는다.
결국,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 그 음식이 만들어진 과정을,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삶을 함께 경험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음식을 통해 과거와 연결되고, 그 과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재에 다시 불러온다.
작고 허름한
이 칼국수 집에서
우리는 오늘도
역사를 먹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