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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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너트
시인 전홍구
어쩌다 풀려난 너트
길 가다 발에 차인 너
볼트와 헤어져 상심했을 너
하필이면 내게 차였나
너 없어도 볼트는
비슷한 짝 만났을 거야
볼트는 외로워하지 않고
세상은 잘 돌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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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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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구 시인은 현실과 삶의 관계를 단순한 사물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풀어내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일반적인 일상 속 사물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외로움, 상실,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경향이 있다. 전홍구 시인의 삶은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난 것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그는 사소한 사물에 담긴 큰 의미를 포착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감정적, 철학적 깊이는 우리 삶의 이면을 성찰하게 하며, 고독과 상실, 관계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첫 행, "어쩌다 풀려난 너트"는 존재의 우연성을 상징한다. 이 너트는 본래의 자리를 잃고, 어디론가 풀려났다. 이 풀려난 너트는 인간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잃었을 때의 느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너트는 그 스스로 풀려난 것이 아니라, 어쩌다 풀려난 것이기에 우연과 필연 사이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길 가다 발에 차인 너"는 고독 속에서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뜻한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외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영향을 받는다. 길 가다 발에 차인 이 너트는 타인에 의해 움직여지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 구절은 삶의 예측 불가능한 충돌과 변화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볼트와 헤어져 상심했을 너"는 관계의 상실을 상징한다. 너트와 볼트는 필연적으로 연결된 관계였지만, 이제 그 관계가 끊어졌다. 이로 인해 너트는 상심하고, 이는 인간이 중요한 관계를 잃었을 때 느끼는 고독과 상실감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 상실은 단순히 부정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새로운 가능성이나 변화의 시작을 암시하기도 한다.
"하필이면 내게 차였나"는 우연한 만남 속에서 느껴지는 자조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너트가 하필 나에게 차였다는 것은 삶 속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건이나 사람들에 대한 우리 내면의 복잡한 감정들을 상징한다. 또한 이는 자기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우연에 의해 휘말리는 듯한 무력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너 없어도 볼트는 비슷한 짝 만났을 거야"는 관계의 상대성을 보여준다. 너트와 볼트는 필연적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어느 하나가 없어도 대체 가능한 존재들이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특정 관계나 사람에 집착하는 것이 필연적이지 않음을 암시하며, 삶은 계속해서 흘러간다는 깨달음을 준다. 볼트는 비슷한 짝을 만날 것이며,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관계나 상황이 찾아온다는 점을 나타낸다.
"볼트는 외로워하지 않고 세상은 잘 돌아갈 거야"는 삶의 무상함과 함께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볼트는 너트가 없어도 외로워하지 않으며,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돌아간다. 이는 개인의 상실이나 고통이 세상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보여주며, 인간이 고독을 느끼는 순간조차도 세상은 그저 돌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 시는 인간 존재의 상실과 고독을 일상의 사물인 너트와 볼트를 통해 섬세하게 드러낸다. 전홍구 시인의 시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단순함 속에 담긴 감정의 깊이이다. 너트와 볼트라는 사소한 존재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민을 풀어내는 그의 시적 기법은, 사물에 감정을 투영하여 삶을 재조명하는 철학적 깊이를 느끼게 한다. 시인은 단순한 일상의 사물에서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감정적으로 이 시는 외로움과 상실의 감정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너트는 풀려나고 볼트와 헤어지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시인의 철학적 가치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그는 상실과 고독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시 전체의 유기적인 흐름은 너트라는 사소한 존재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시인은 너트와 볼트라는 단순한 사물들을 통해 인간의 관계와 존재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풀어내며, 그 과정에서 독자는 삶의 무상함과 동시에 그 안에 숨겨진 긍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요컨대, 전홍구 시인의 "외로운 너트"는 인간의 고독과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담은 작품이다. 시인은 사소한 사물들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하며, 삶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유도한다. 그가 표현하는 감정적 깊이와 철학적 가치관은 독자로 일상의 사물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