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6. 2024
지금 이 시간 -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지은경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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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간 -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시인 지은경
면벽 수행 7년 만에 허공을 딛고 일어선다
세상 문 열고 만난 첫사랑
새벽 날비린내 일 인분의 고독이다
삶의 무게는 무거운가 가벼운가
우주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라
모래시계는 멈추지 않고
앵무새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선택은 매번 초보자의 연습 같은 거
한 달을 놀다가는 생은 짧고도 짧아라
맴 맴 맴 맵 매애애애~
야금야금 나를 먹고 있는 시간아
목청껏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해석해 봐
사막의 제왕 뜨거운 태양아
목숨 걸고 섹스하는 우리 종족에게 불륜인가 아름다운가 묻지 마라
무거우면서 가벼운 생의 속살
뜨거운 생명을 심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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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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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경 시인은 세상의 무게와 본질을 깊게 관조하며 인간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중견 시인이다.
그의 삶은 어쩌면 끊임없는 명상과 자기 성찰로 이어진 면벽 수행面壁修行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시는 시인의 사유의 깊이와 예민한 감수성이 투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시인의 내면이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시어들로 형상화되어 있다.
삶을 단순히 흘러가는 것으로 보지 않고 매 순간을 진지하게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면벽 수행 7년 만에 허공을 딛고 일어선다"는 오랜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통과한 후 마주하는 현실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면벽 수행’은 시인의 고독한 명상과 성찰의 시간을 의미하며, ‘허공을 딛고 일어선다’는 그런 수행 이후 얻은 깨달음과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현실과 대면하는 순간, 그가 느끼는 첫 감각은 날비린내와 같은 날카로움이다. 이는 삶에 대한 통렬한 인식, 혹은 현실의 냉혹한 면모를 반영한다.
이어지는 "새벽 날비린내 일 인분의 고독이다"는 시인이 처음 마주한 세상의 첫 느낌을 묘사하고 있다. 새벽의 날비린내는 아침의 청량함이자 서늘한 현실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감각적 이미지다. 그리고 ‘일 인분의 고독’은 개인적이고 내밀內密한 고독의 무게를 나타낸다. 삶의 깊이와 고독은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시인을 감싸고 있으며, 시인은 그 고독의 의미를 시적 언어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삶의 무게는 무거운가 가벼운가"라는 질문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이다. 이는 삶을 견디는 것이 버거운가, 혹은 그저 사소한 것인가를 묻는 것으로, 시인이 삶의 무게와 의미를 가늠하며 겪는 혼란과 고민을 드러낸다. 삶의 무게에 대한 감각은 모호하지만, 동시에 그 가벼움과 무거움은 공존하고 있다.
"우주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라 모래시계는 멈추지 않고 앵무새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에서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세상의 본질을 깨닫는 것처럼 추상적이고 어려운 일이다. 모래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앵무새의 반복된 말은 우리의 일상과 관성적인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시인은 시간의 무심한 흐름과 변화 없는 삶의 반복성을 통해 인간이 가지는 삶의 고민과 애환을 나타내고 있다.
"선택은 매번 초보자의 연습 같은 거"라는 구절은 우리 삶의 모든 선택이 늘 처음인 것처럼 어렵고 서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삶에서의 결정들은 언제나 숙련되지 못하고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거듭하는, 마치 초보자가 연습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삶의 불확실성과 일상의 도전에 대한 시인의 솔직한 고백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의 삶을 대변하는 말이다.
"한 달을 놀다가는 생은 짧고도 짧아라"는 시간의 흐름과 생의 유한함을 깨닫는 부분이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조차 짧고도 짧게 흘러가며 생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다. 시인은 짧은 생의 순간들이 얼마나 덧없고 귀한 것인지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맴 맴 맴 맵 매애애애~ 야금야금 나를 먹고 있는 시간아"는 시간의 흐름을 구체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맴 맴 맴’은 파리나 곤충의 소리를 연상시키며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미세한 소음을 그린다. '야금야금 나를 먹고 있는 시간'은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 시간의 무자비함을 강조한다.
"목청껏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해석해 봐 사막의 제왕 뜨거운 태양아"는 삶의 열정과 그 의미를 묻는 시인의 질문이다. 목청껏 부르는 노래는 뜨겁고 열정적인 삶의 태도를, 사막의 태양은 그 열정과 활기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열정의 이유를 찾고자 한다.
"목숨 걸고 섹스하는 우리 종족에게 불륜인가 아름다운가 묻지 마라 무거우면서 가벼운 생의 속살 뜨거운 생명을 심고 싶은 거다"는 생명의 본능적인 욕망과 그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그린다. 시인은 사랑과 생명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생의 본질적 욕망과 순수성을 강조한다. 이는 생명이 가진 이중적 속성, 즉 무거우면서 가벼운 생의 본질을 포착한 것이며, 생명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존중이 담겨 있다.
요컨대, 지은경 시인의 이 시는 시간과 삶,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된 고독과 열정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표현의 농도濃度는 진하고 감각적이며, 시적 언어를 통해 세상과 존재의 의미를 통찰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삶의 무게와 가벼움, 고독과 열정이 공존하는 이 시는 인간의 존재적 상황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그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은경 시인의 시는,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시어의 이미지와 감성을 강조하여 독자에게 삶의 본질과 생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