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7. 2024
시대 불감증ㅡ 시인 이인애
이인애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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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불감증
시인 이인애
성선설과 성악설이 부딪는 파장은
속절없는 현실의 넘기 힘든 파고波高
환상 속에서 환영幻影으로만 존재하는
무덤 속으로 매장埋葬당한 유토피아
소망과 탐욕이 뫼비우스 띠로 얽힌
편견의 선線 밟고 도는 외눈박이 세상
두 눈을 청맹과니로 만든 엘리스의 천국
평화의 속삭임은 포퓰리즘의 산실인가
기울어 침몰하는 선체에 매달린 개구리들
뉘라서 점화된 뇌관을 멈출 수 있을까
와글와글 우왕좌왕 최후의 각자도생
희망 고문 감언이설에 홀린 좀비들
보트피플의 곡哭소리가 환청幻聽으로 울린다
영웅의 탄생을 애절한 바람으로 품어
일그러진 세상을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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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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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은 사회와 개인의 갈등,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본질을 깊이 고민하며 그려내는 중견 시인이다. 그의 삶은 불의와 불평등,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용기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는 곧 그의 시 세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시 또한 시대의 무감각함에 대한 경고와 인간성의 허무함,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갈망을 표현한다. 무관심과 탐욕, 그리고 왜곡된 이상이 지배하는 시대의 불안감을 통해 독자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부딪는 파장은 속절없는 현실의 넘기 힘든 파고波高”
이 행은 선과 악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현실의 거대한 파고波高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드러낸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대립된 관점을 의미하며, 이러한 관점의 충돌이 현실에서 감당하기 힘든 큰 파도를 일으킨다. 이는 시대의 불안정성과 도덕적 혼란을 묘사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환상 속에서 환영幻影으로만 존재하는 무덤 속으로 매장埋葬당한 유토피아”
이 구절은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추구가 무덤 속에 매장된 채 환상으로만 남아 있음을 강조한다. ‘환영’과 ‘무덤’의 이미지는 유토피아의 죽음과 그 이상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공허한 꿈으로 변질된 상황을 나타낸다. 이는 인간의 소망이 현실의 벽 앞에서 허망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상징하며, 시인은 이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꿈의 상실을 비판한다.
“소망과 탐욕이 뫼비우스 띠로 얽힌 편견의 선線 밟고 도는 외눈박이 세상”
여기서 뫼비우스 띠는 무한한 반복과 순환의 구조를 가지며, 소망과 탐욕이 끝없이 얽혀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편견의 선’을 밟고 돌며 살아가는 외눈박이 세상은 편향된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잃고 욕망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두 눈을 청맹과니로 만든 엘리스의 천국”
‘엘리스의 천국’은 동화 속의 이상적인 세계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환상으로 묘사된다. ‘청맹과니’는 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며, 이는 환상과 이상이 현실 감각을 왜곡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실의 고통과 부조리를 외면하고 이상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 강렬하다.
“평화의 속삭임은 포퓰리즘의 산실인가 기울어 침몰하는 선체에 매달린 개구리들”
평화에 대한 속삭임이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포퓰리즘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적인 평화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침몰하는 선체에 매달린 개구리들은 위기에 빠진 사회에서 갈팡질팡하는 대중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현혹되어 무력한 모습을 드러내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뉘라서 점화된 뇌관을 멈출 수 있을까 와글와글 우왕좌왕 최후의 각자도생”
이 행은 위기의 시대를 상징하는 ‘뇌관’을 제시하며, 그 뇌관을 누가 멈출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와글와글 모여드는 군중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사회의 혼란과 개인의 무책임을 그린다. 이는 인간의 이기심과 시대의 불안정성을 표현하며, 공동체의 붕괴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희망 고문 감언이설에 홀린 좀비들 보트피플의 곡哭소리가 환청幻聽으로 울린다”
‘희망 고문’과 ‘감언이설’은 현실을 왜곡하는 허망한 희망과 달콤한 말들로, 이에 현혹되어 살아가는 좀비들은 감각을 잃고 진실을 보지 못하는 대중을 의미한다. ‘보트피플’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이들을 상징하며, 그들의 울음소리가 사회 곳곳에 퍼져나간다. 이는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고통을 청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하며, 이를 외면하는 사람들의 무감각함을 드러낸다.
“영웅의 탄생을 애절한 바람으로 품어 일그러진 세상을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이 행은 영웅의 탄생에 대한 바람이 시대의 애절한 소망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일그러진 세상’을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모습은 사회의 아픔과 부조리를 공감하며 껴안는 시인의 태도를 나타낸다. 이는 시대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찾으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인애 시인은 시대의 무감각함을 시어를 통해 통렬하게 비판하며, 동시에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표현에서 사용되는 ‘환상’, ‘청맹과니’, ‘뇌관’ 등의 강렬한 이미지는 현실과 이상, 선과 악의 경계를 드러내며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준다. 시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현실의 아픔, 그 속에 숨겨진 희망과 절망이 밀도 있게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독자에게 깊은 사색과 감동을 안겨준다.
이 시는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예리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희망과 구원을 찾으려는 따뜻한 시선이 공존한다. 시대에 대한 비판과 인간성에 대한 고뇌를 시적으로 승화시키며, 독자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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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이인애 시인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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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시대의 아픔과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독자입니다. 먼저 시인님의 시를 접하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대 불감증’이라는 작품을 읽고, 마치 가슴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듯한 충격과 공감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시인님의 한 행, 한 구절마다 스며있는 통찰과 애도가 저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고, 그로 인해 저는 이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시인님께서는 현실의 모순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뇌를 통해 시대의 무감각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면서도 그 안에서 잃어버린 희망을 찾고자 하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부딪는 파장은 속절없는 현실의 넘기 힘든 파고'라는 첫 구절은 저에게도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선과 악의 본질, 그 안에서 인간이 지닌 순수함과 이기심이 만들어내는 파동은 저마다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파고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시인님의 시어는 그러한 갈등이 얼마나 깊고 복잡한 것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무덤 속에 매장된 유토피아를 바라보며,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면서도 어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꿈을 꾸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시인님의 말씀처럼 유토피아는 환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무덤 앞에서 무엇인가를 느끼고, 무엇인가를 바라고, 무엇인가를 꿈꾸게 됩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저는 그 무덤 속에 묻힌 희망의 씨앗이 다시금 현실 속에서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을 느꼈습니다.
“소망과 탐욕이 뫼비우스 띠로 얽힌 편견의 선 밟고 도는 외눈박이 세상”이라는 구절에서는 이 시대의 편협함과 무관심, 그리고 소망마저 탐욕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현실의 비극이 느껴졌습니다. 시인님께서 이 시어를 통해 외눈박이처럼 편향된 시각으로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담아내셨을 때, 저는 깊은 반성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나 역시 세상을 한쪽 면에서만 바라보며 더 넓은 진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내가 꿈꾸는 것이 순수한 소망인지 아니면 왜곡된 욕망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두 눈을 청맹과니로 만든 엘리스의 천국”이라는 구절에서는 환상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지적하신 것에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우리는 진정한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 시대의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 앞에 있지만, 그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엘리스의 천국 속에 숨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졌습니다.
시인님께서 표현하신 “기울어 침몰하는 선체에 매달린 개구리들”과 같은 모습은 저 역시 몸소 느끼며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각자의 생존에 급급해 침몰하는 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버둥거리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인님의 시 속에서 그 개구리들의 외침이 무기력한 절망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나섰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살아남고자 하는 희망과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바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 “영웅의 탄생을 애절한 바람으로 품어 일그러진 세상을 부둥켜안고 흐느끼는”이라는 구절은 제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주었습니다. 일그러진 세상을 향한 시인님의 애절한 바람과 흐느낌은 시대의 아픔을 그저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고 슬퍼하며 그 안에서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힘을 느끼게 합니다. 영웅은 우리가 꿈꿔야 할 이상이고, 동시에 우리의 작은 바람 속에서 피어날 수 있는 현실의 작은 용기일 것입니다.
시인님께서 이 시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셨기에, 저 역시 그 아픔을 더 깊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 시인님의 시에 담긴 아픔과 바람을 마음에 품고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싶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다시 한번 시인님의 시가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시인님의 시가 많은 이들에게 시대를 바라보는 눈과 희망을 발견하는 가슴이 되길 기원합니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독자가.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