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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8. 2024

박철언 시인의 '요즘 시' 읽기를 김왕식 평하다

청민 박철언 시인과 김왕식 평론가






    ■




                      요즘 시 읽기




                                시인 청민 박철언







요즘 시 읽기가 힘들구나
시를 적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철학 논문을 쓴 것인지
읽어도 알 수 없는 문장들
이것을 시라고 하고

감정의 유희만 일삼으며
잡다한 표현들만 죽 나열해 놓고
살아 움직이지 않는, 죽은 언어에다
자꾸 물감질만 해대면서
이것도 시라고 한다

졸음에 겨워 시 읽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감정은 없고 글자들만 말똥거리니
시는 시가 아니구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은 일상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인간적 감정을 묘사하고자 하는 시인이다.
그가 시에서 주로 탐구하는 주제는 인간의 감정과 그 감정의 퇴색 혹은 소외에 관한 것이다. 현실과 철학의 경계에서 언어의 진정성을 찾고자 하는 그의 작품은 깊이 있고 진솔하다.
이 시 또한 현대 시가 가진 모호模糊함과 난해함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으며, 그의 삶과 작품 세계에 내재된 '진정성'과 '감정의 깊이'가 도드라진다.

첫 번째 행에서 "요즘 시 읽기가 힘들구나"라고 말하며
시인은 현대 시의 난해함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吐露하고 있다. 이는 그가 느끼는 현시대의 언어와 감정의 단절, 즉 시가 더 이상 마음에 와닿지 않고 논문처럼 느껴진다는 불만을 표출한다. 시는 감정과 감동의 예술이어야 하지만, 현 시의 난해함은 그것이 본래 지녀야 할 생명력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음 행, "시를 적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철학 논문을 쓴 것인지 읽어도 알 수 없는 문장들"에서는
현대 시의 지나친 철학적이고 사변적思辨的인 문장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시를 감정의 표현이 아닌 논리적 글쓰기로 만들어버린 작금의 현상을 풍자하고 있다. 시인은 철학적인 논의와 분석이 아닌, 인간의 진솔한 감정이 드러나는 문장들이 시에서 중요함을 암시한다.

"감정의 유희만 일삼으며 잡다한 표현들만 죽 나열해 놓고"는
 시에서 표현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의미 없는 감정 놀음으로 치우쳐졌음을 지적한다. 이는 시의 본질적인 의미나 감동보다도 감정을 꾸미고 치장하는 데 집중하는 현대 시에 대한 비판으로, 본래 시가 지녀야 할 감동과 깊이는 사라지고 겉으로만 화려한 표현들이 나열된다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지 않는, 죽은 언어에다 자꾸 물감질만 해대면서 이것도 시라고 한다"에서는
현대 시에서 언어가 더 이상 살아있는 감정과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고, 겉만 치장된 '죽은 언어'임을 비판한다. 물감질, 즉 꾸며내는 행위를 통해 겉모습만 강조하는 시의 모습은 시의 본질을 잃고 단순히 형식에 집착하게 됨을 보여준다.

"졸음에 겨워 시 읽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감정은 없고 글자들만 말똥거리니 시는 시가 아니구나"는
이 시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 읽기가 어려운 이유는 감정이 없는 데 있고, 단지 글자들의 나열만이 보이기 때문이다. 시는 감정이 없으면 시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며, 이는 시의 본질적인 의미와 감동이 결여되었음을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언어의 진정성과 감동이 빠진 현대 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박철언 시인은 언어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고, 그것이 살아있는 감정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시인이 가진 가치철학과도 연결된다. 시인은 꾸밈없는 언어의 힘을 믿으며, 시가 독자의 감정에 깊게 닿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의 감성적인 측면은 진솔하고 직설적이다. 시는 현대 시의 난해함을 넘어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감정과 언어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시인은 언어의 이미지보다는 감정의 본질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나치게 화려한 언어보다는 진솔한 언어를 추구한다. 또한 시 전체의 유기적인 흐름은 현대 시의 난해함에서 시작해 그것이 가진 문제를 차례로 지적하며, 결국 감정의 소중함과 언어의 진정성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구조는 시의 주제 의식을 명확하게 전달하면서도 독자로 시의 깊이를 천천히 깨닫게 해 준다.

이 시의 표현적 특징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화려한 수식어를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언어로 현대 시의 현실을 꼬집고 있으며, 진솔함과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시의 감동을 느끼게 한다. 또한 독특한 비유와 풍자를 통해 시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읽는 이로 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요컨대, 박철언의 이 시는 현대 시의 난해함과 감정의 부재를 비판하고, 시의 본질인 감동과 언어의 진정성을 되찾으려는 시인의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감정이 배제된 현대 시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면서도, 시의 본질과 언어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시의 진정한 가치와 본질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키며, 독자에게 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박철언 시인께 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시를 사랑하고, 언어로 사유하며, 그 감정을 나누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는 독자이자 시인으로서, 선생님의 시를 접하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시에서 현대 시의 난해함과 감정의 부재를 지적하는 그 직설적이고도 진솔한 어조는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시의 본질과 언어의 진정성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통해 시가 가진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 하시는 마음에는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 시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며 시를 쓰고 있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시를 읽고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저와 같이 다소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언어로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선생님의 시가 자칫 경고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 시를 읽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시의 본질적인 감정이 결여되었고, 난해함이 지나치기 때문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는 분명 동의하는 바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시의 다양한 형태와 언어의 다층적인 표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가 난해하다는 것은 많은 경우 시인과 독자가 서로 다른 감각과 감정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일 것입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언어를 선택하는 기준, 그리고 이미지와 상징을 다루는 태도는 모두 각 시인마다 다르고, 그 개성은 시인 스스로의 삶과 철학에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지는 시가 또 다른 이에게는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직설적이고 솔직한 시가 누군가에게는 거칠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시를 읽는 독자들의 경험, 배경, 가치관에 따라 시는 무궁무진하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시의 난해함을 비판하는 것이 곧 시를 한 가지 방식으로만 규정짓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가 너무 난해해 독자와 소통하지 못한다면 물론 문제가 되겠지만, 모든 시가 쉽게 읽히고 바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한계를 설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시인마다 자신만의 언어와 표현 방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 시선이 때로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그것이 한편으로는 시가 가지는 다층적이고 풍부한 해석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시는 때로는 삶의 단순한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인 질문과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해하다는 것 자체만으로 시를 규정짓거나 매도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시가 본래 지녀야 할 감동과 진정성에 대해 강조하고 계십니다. 저 역시 그 점에 크게 공감하며, 시가 감정을 움직이는 힘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감동은 그 형태와 표현이 무궁무진하며, 시인마다 그것을 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시의 난해함을 지적하시며 시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신 선생님의 의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만, 난해함 자체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조금은 고려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의 난해함은 때로는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과 사유를 열어주는 길잡이가 될 수 있으며, 시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깊이 있는 감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또한, 시의 난해함을 단순히 언어의 수식이나 감정의 부재로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난해함을 통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복잡한 감정, 인생의 미묘한 아름다움, 혹은 철학적 질문들이 담겨 있다고 본다면, 난해한 시 또한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난해함이 독자를 멀어지게 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시를 더 깊이 읽고, 더 많은 생각을 하며, 시인의 세계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박철언 시인께서는 현대 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시의 본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저를 비롯한 많은 시인과 독자들이 시의 가치와 표현 방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다만 저는 시가 하나의 형식이나 감정만을 담아내는 것이 아닌, 다양한 시각과 사유를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시가 단순히 쉬워야 하고, 직설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난해한 시도 그 나름대로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선생님의 시와 비평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이 되기를 바라며, 그로 인해 시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더 넓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시적 고민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와 언어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여정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철언 시인께,





안녕하십니까? 먼저, 시인님의 시를 통해 요즘 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깊은 공감을 느끼고 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요즘 시 읽기가 힘들구나'라는 구절에서 시작하는 시를 읽으면서, 저 역시 시를 사랑하고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느껴왔던 고민과 생각들이 시인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시를 쓰고 읽는 행위는 본래 감정의 깊은 울림과 진솔한 표현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저 또한 시인님께 공감합니다.

요즘 시대의 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사람들 마음에 닿아 공감과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대 시는 종종 지나치게 어려운 언어와 복잡한 표현들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시인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시가 마치 철학 논문처럼 느껴지거나, 감정의 유희만 나열한 듯 보일 때, 그것이 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시인은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예술가입니다. 그리고 시는 그 감정의 전달자로서, 독자와 시인이 함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다리와도 같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시가 너무 난해해져 독자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면, 그 시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다양한 해석과 사유의 깊이를 담은 시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그 가치가 독자들에게 너무나 어려워 다가가지 못한다면, 시는 고독한 독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현대 시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은 아마도 이런 부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정은 소통되어야 하며, 언어는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화려하고 복잡한 표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인 비유들은 시를 오히려 독자들과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속에서 감정과 이야기를 찾는 여정일 텐데, 그 여정이 너무 험난하고 어려워 독자들이 쉽게 포기해 버린다면 시는 그 아름다운 가치와 본질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시의 난해함은 종종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 깊게 숨기기 위한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힘든 상징과 메타포로 가득 찬다면, 독자들은 그 시를 이해하기 위해 시인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 자체를 해독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런 경우 시는 본래의 목적, 즉 감정의 전달과 공감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단순한 언어적 유희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시가 가진 진정한 힘은 언어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삶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시가 가진 보편성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특정한 계층이나 지식수준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읽고 느낄 수 있는 매체가 되어야 합니다. 현대 시에서 종종 발견되는 난해함과 추상적인 표현들은 이러한 보편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됩니다. 시를 읽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단순히 표현이 어려워서만이 아닙니다.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지나친 복잡함과 의미의 숨김은 시를 오히려 독자들에게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느낀 것은 시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읽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언어의 힘. 그것이 시가 본래 가져야 할 매력이자, 시인으로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너무 난해해지는 순간, 시는 스스로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드러내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시는 독자와의 대화이자 소통이기에, 그 대화가 가능하려면 언어는 명료해야 하고, 감정은 진솔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님의 지적처럼 '살아 움직이는 언어'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한순간의 감정, 삶의 순간, 세상의 진리를 담아내는 것이며, 이를 통해 독자들이 감동하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시를 읽고 난해함에 머리를 싸매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와 감정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위로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시인님께서 주장하신 대로, 꾸미지 않고 진정성 있는 언어로 시를 쓸 수 있다면, 그 시는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고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시의 아름다움은 그 단순함 속에 있고, 언어의 진솔함 속에 있습니다. 시인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시를 쓰고자 노력한다면, 시는 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것이고,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감동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박철언 시인님께서 지적하신 난해한 시의 문제는 시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시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저 또한 계속해나갈 것이며, 앞으로도 시를 쓰고 읽는 모든 이들에게 시가 더욱 친숙하고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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