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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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청람 김왕식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리나'서두에서 말한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서로 닮은 데가 많다.
그러나 모든 불행한 가족은
그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마치 행복은 정해진 형태를 지니고 있고, 불행은 저마다의 고유한 색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행복이란 것이 얼마나 다양한지, 또 얼마나 주관적인지를 알고 있지만, 톨스토이는 그 다양성을 뭉뚱그려 하나의 모습으로 축약하고 있다. 왜 그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을까? 이 문장을 되뇌어 볼 때마다 나는 불행의 깊은 다양성과 행복의 단조로움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그것을 갈망하지만, 정작 그 정체는 모호하다. 어떤 이에게 행복은 사랑하는 이와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순간일 것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치열한 노력 끝에 이룬 성취일 것이다. 행복의 모습은 이렇게 각양각색이지만, 그 공통점은 무엇보다 ‘평화’와 ‘안정’이라는 점에 있다. 행복한 순간에는 마음의 평화가 있고, 삶에 대한 안정감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가족은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삶의 평온함 속에서,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일상의 소소함에 감사한다.
불행은 다르다.
불행은 무한한 變奏를 가지며, 그 변주곡은 가족마다 다르게 연주된다. 어떤 가족은 소리 없이 다가오는 외로움 속에 불행하고, 또 다른 가족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다툼과 갈등 속에서 불행하다. 때로는 경제적 어려움이 가족을 무너뜨리고, 때로는 건강 문제나 상실의 슬픔이 불행의 씨앗이 된다. 불행의 종류는 이처럼 끝이 없고, 그 깊이 또한 다양하다.
불행은 또한 고유한 성격을 지닌다. 행복은 비교적 안정되고 단순한 면이 있지만, 불행은 갈등과 고통, 분노와 슬픔을 섞어 하나의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러기에 불행한 가족은 그들의 고유한 색깔로 세상에 존재한다. 불행의 spectrum은 무지개처럼 넓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불행의 형태를 본다. 불행의 고유성은 우리에게 그 고통의 깊이와 무게를 느끼게 해 주며, 그 고통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게 한다.
톨스토이의 이 말은 단순히 행복과 불행의 차이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삶 그 자체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행복에 도달하는 길은 끝이 없고, 때로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그것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행복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불행의 시간은 우리에게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해 주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불행은 각기 다르고, 행복은 비슷할까? 아마도 불행은 인간의 결핍과 결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 다른 고통과 아픔을 겪는다. 행복은 缺乏이 없고, 완전한 상태에 가까워지지만, 불행은 그 완전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든 모순과 역설을 품고 있다.
불행은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의 불행을 보고 그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연대와 사랑을 배우고, 행복을 추구하는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결국 톨스토이의 말은 행복의 단조로움을 말하는 동시에, 불행의 고유성과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행복은 평범하고 익숙하며, 모든 가족이 그것을 닮을 수 있다. 그러나 불행은 특별하고 고유하며,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은 더 깊고 복잡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불행이 없다면 행복의 가치를 알 수 없고, 그 불행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행복과 불행은 서로 대비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완성하는 두 얼굴이다. 행복만이 존재하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다시 행복을 찾아가는 노정이야말로 우리 삶을 더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든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말처럼, 불행은 각자 고유하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의 삶이 결국 서로 닮아 있다는 아이러니한 진실이다.
불행이 행복을 완성시키고, 행복이 불행을 감싸는 이 逆說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가족과 함께, 그들만의 고유한 불행과 행복을 만들어가며, 끝없는 삶의 路程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