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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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숙제처럼
시인 백영호
인생을 숙제처럼
닦달하며
달려왔구나
너무 틈이 없었다
앞만 보고 쉼 없이
뛰어 왔구나
인생의 바다에 왔다
철썩이는 파도
해조음에 상념을
하나 둘 내려놓고
나를 헹구는 시간
내 모둠을
장악해 버린 너라는 파도
이제 바다가 된다
처얼썩 철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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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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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영호는 삶을 마치 숙제처럼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는 인생의 바다를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자신의 여정을 성찰하며,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다. 시인은 한때 시 콘테스트에 기대어 자신의 노력을 빛내고자 했으나,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서 진솔하게 자신의 감정을 풀어냈다. 이는 오히려 시인으로서의 진정성과 정서적 깊이를 더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시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삶의 투쟁과 도전,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내면의 평화에 대한 기록이다.
시의 첫 행, “인생을 숙제처럼 닦달하며 달려왔구나”는 시인의 자기 성찰과 후회의 표현이다.
여기서 "숙제처럼"이라는 표현은 인생을 마치 해야 할 일로 간주하고 쫓기는 듯한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것은 시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의무감에 찌들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쁘게 살아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구절이다. 이 표현을 통해 독자는 시인의 인생이 기계적이고 목적지향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닦달하며 달려왔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에 사로잡혀 여유를 잃은 시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두 번째 행, “너무 틈이 없었다 앞만 보고 쉼 없이 뛰어 왔구나”는 시인의 자기반성적 태도를 강조한다. "틈이 없었다"는 것은 시인의 인생에 여유와 휴식이 없었음을 시사하며, 그의 인생이 얼마나 바쁘고 치열했는지를 나타낸다. 이는 현대인의 일상을 그대로 대변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앞만 보고 쉼 없이 뛰어 왔구나"라는 표현은 목표와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전진해 온 그의 삶을 묘사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인생의 여백을 잃어버린 채 끊임없이 달려온 자신을 돌아본다.
시의 중반부에서 “인생의 바다에 왔다 철썩이는 파도 해조음에 상념을 하나 둘 내려놓고 나를 헹구는 시간”이라는 표현은 시인이 새로운 국면에 도달했음을 상징한다. "인생의 바다"는 인생의 넓고 깊은 면모를 나타내며, 철썩이는 파도는 시인의 내적 고뇌와 변화를 상징한다. "해조음에 상념을 하나 둘 내려놓고"라는 구절은 시인이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장면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 정화와 자기 성찰을 의미한다. "나를 헹구는 시간"은 과거의 자신을 씻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려는 시인의 의지를 드러낸다.
이어서 "내 모둠을 장악해 버린 너라는 파도 이제 바다가 된다"라는 표현은 시인의 내면을 장악했던 어떤 존재나 감정이 점차 해소되고,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너라는 파도"는 시인을 흔들어 놓은 시련이나 인생의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것이 결국 바다에 흡수되어 평화로워지는 과정을 나타낸다. 이는 시인의 삶이 더 이상 불안과 갈등에 휩싸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녹아드는 것으로 변화했음을 상징한다.
마지막 구절 "이제 바다가 된다 철썩철썩..."에서 시인은 바다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처얼썩 철썩..."이라는 의성어를 통해 파도의 소리와 함께 끝없는 흐름 속에서 평화롭게 존재하는 바다의 모습을 시각화한다. 이는 시인이 더 이상 불안과 갈등을 느끼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초연한 태도를 표현한다.
이 시의 감성적 측면은 일상적이고 친근한 언어를 통해 삶의 깊은 성찰을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시인은 인생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상처를 자연의 이미지로 포착하여 표현함으로써 한 개인의 감정을 초월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파도와 바다라는 이미지는 시인의 가치철학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는 인간의 삶이 자연의 일부로 흘러가며 모든 고통과 슬픔 또한 결국 자연의 흐름 속에 사라진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백영호 시인의 시는 간결한 표현 속에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으며, 그의 시어는 단순하면서도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표현상의 특징은 독자들로 그의 시를 읽는 순간 각 구절에 숨겨진 삶의 다양한 단면을 마주하게 한다. 시인은 복잡한 사유를 단순하고 명료한 언어로 풀어내며, 삶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시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흐름이 유지되며, 삶의 고통과 고뇌에서부터 평화와 초월의 경지로 이어지는 내러티브가 완성된다. 삶을 숙제처럼 살아왔던 시인이 인생의 바다에서 평화를 찾는 과정은 결국 시인의 가치철학을 드러낸다. 그 철학은 인생의 고통과 시련은 결국 파도처럼 사라지고, 모든 것은 자연의 일부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백영호 시인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시로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시는 고뇌와 평화의 공존을 보여주며, 인생에 대한 단순하지만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