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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30. 2024

해공 신익희가 난 그 곳 서하리에

  안최호 작가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해공 신익희가 난 그 곳 서하리에






                                                안최호







나는 경기도 광주 초월면 서하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국민학교에 들어가며 서하리가 아닌 읍내 광주로 유학을 가 광주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내가 살던 서하리 마을은 현재는 사마루로 불리며, 초대 국회의장을 지낸 해공 신익희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집 앞에 우뚝 솟은 무갑산을 바라보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즐겼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던 그 시절, 산에서 나물을 뜯어 양식을 마련하고, 도토리, 밤, 으름, 다래, 머루 등을 주워 먹으며 이 산 저 산을 다니던 시간은 자연 속에서 배움을 얻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을을 흐르던 경안천은 팔당으로 이어지는 넓은 개천이었고, 고기가 풍부해 낚시 도구 없이도 족대나 싸리로 만든 삼태기만 있으면 고기를 잡는 데 문제가 없었다. 형님들을 따라 물놀이도 하고 고기를 잡으며 놀던 어린 시절은 광주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끝이 났다.


광주초등학교 입학 첫날,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가슴에 손수건을 옷핀으로 단 채 등교했다. 선생님께서 이름을 부를 때,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목소리가 크고 대답도 길었다. "안길근!" 하고 부르면 다른 아이들은 간단하게 "네!"라고 답했지만, 나는 "네~~~에!"라고 크게 답하며 친구들의 시선을 즐겼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시면 언제나 적극적으로 답변했고, 쉬는 시간마다 신나게 뛰어놀았다.


2학년이 되면서 선생님과 교실, 친구들이 모두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활동적이었고, 교실보다는 학교 소사 아저씨를 도와주는 것이 더 좋았다. 소사 아저씨도 나를 착하게 보셨고, 나는 아저씨를 도와드리는 착한 어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아저씨 똥 퍼서 나르는 구루마 계속 밀 거야, 아니면 교실에서 공부할 거야?"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저씨 도와드리면서 공부도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고, 그때부터 선생님께서는 나를 "이 주책바가지야"라고 부르기 시작하셨다. 그 말이 친구들에게 퍼지면서 내 별명은 '주책바가지'가 되었고, 곧 '똥바가지'로 변했다. 이후 내 이름은 완전히 '똥바가지'로 불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별명이 싫어 싸움이 잦았고, 결국 학교를 다닐 때마다 책보에 책과 공책, 그리고 무기처럼 쓰기 위해 크고 두꺼운 책받침을 함께 싸서 다녔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내 이름을 똥바가지라고 부르자 나는 "내 이름 똥바가지 아니거든!" 하고는 싸움을 결심했다. 약속 장소인 충혼탑 자갈밭에서 싸움이 시작되었고, 수십 번이 넘게 넘어지고 구르며 주먹이 오갔다. 상대방의 주먹이 내 콧등에 맞아 코피가 터지자,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책보를 들어 상대방의 머리 위를 내리쳤다. 싸움은 그렇게 끝났고, 우리는 교무실로 끌려가 일주일간 청소를 하며 벌을 받았다.


그 후 수십 년이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내 별명은 지워지지 않았다. 가족 모두가 근자 돌림으로 이름이 정해져 있었기에 '안길근'이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새천년을 맞아 2000년에 '안최호'로 개명하였다. 이후 각종 관공서와 학교, 은행, 보험사 등을 찾아다니며 개명 사실을 알리고 친구들에게도 문자와 카톡으로 알렸다. 똥바가지로 살아온 40여 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똥바가지라는 별명이 이제는 싫지 않다. 옛 어른들은 똥이 돈이라고 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있어서 인분은 꼭 필요하다. 화학 비료나 농약보다 자연이 주는 거름이 중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화장실은 호주산 친환경 화장실로 배설물이 모두 물로 변하고 냄새도 나지 않아, 물로 변한 인분을 밭에 뿌려 곡식을 심으면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자연을 사랑하며 그 속에서 황혼의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 그것이 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최호 작가의 "해공 신익희가 난 그 곳 서하리에" 서정적인 유년 시절의 기억과 삶의 철학이 녹아든 진솔한 자전적 에세이로, 성장의 시간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글은 자연 속에서의 삶과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이름을 둘러싼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마주한 다양한 경험들을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내며 독자에게 친근함을 전한다. 글 속에서 드러나는 서정성과 삶에 대한 소박한 태도는 독자에게 따뜻한 공감과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의 유년 시절을 보낸 서하리 마을은 마치 작은 유토피아처럼 그려진다. 그림을 그리며 무갑산을 바라보던 소년, 도토리와 밤을 주우며 산을 뛰어다니던 소년의 모습은 당시의 자연과 삶의 풍경을 눈앞에 펼쳐 보이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의 먹거리를 산에서 채집하고, 맑은 개천에서 고기를 잡던 이야기는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과 단순함을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 성장하며 자연을 통해 배우고 느꼈던 작가의 경험들은 오늘날 잊혀가는 소박하고 순수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이는 작가가 자연을 사랑하며 그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자,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그 속에 뿌리내린 존재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광주초등학교 입학 후, 자신을 향한 시선과 정체성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주목받으며 활발하게 뛰어다니던 모습, 그리고 선생님의 농담에서 시작된 '똥바가지'라는 별명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자신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별명을 둘러싼 갈등과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 싸움, 그리고 결국 그 이름에 익숙해지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자아 형성과 성장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시선과 별명 속에서도 변치 않는 자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특히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이름과 삶에 대한 관점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똥바가지'라는 별명은 과거에는 상처가 되었지만, 이제는 작가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름이 되었다. 똥은 곧 자연의 한 부분이며, 화학 비료와 농약보다 자연이 주는 거름이 소중하다는 관점은 삶을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작가의 철학을 잘 드러낸다. 또한 개명 이후에도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고백하면서, 이름을 통해 삶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성숙한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이 글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서정성과 철학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와 자연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하며 그 속에서 황혼의 삶을 만들어가는 작가의 모습은 마치 자연의 한 부분처럼 겸허하고 소박하다. 글의 전체적인 흐름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성장과 성숙, 그리고 자연 속에 녹아든 삶을 그려내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얻게 한다. '똥바가지'라는 별명이 이제는 단순한 놀림이 아닌, 자연과 삶의 본질을 담고 있는 상징이 되었듯이, 작가는 그 이름과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해공 신익희가 난 그 곳 서하리에"어쩌면 작가 자신만의 작은 생애사일지도 모른다.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자연 속에서 삶의 본질을 찾는 노정은 인간과 자연, 이름과 정체성,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다. 이 글은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현대인이 잊기 쉬운 삶의 소박함과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돌아보게 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안최호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삶의 철학을 담백하게 풀어내며, 자신이 지닌 상처와 아픔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강한 내면을 드러낸다. "똥바가지"라는 별명 속에 담긴 그의 인생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상처와 성장,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진솔한 목소리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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