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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30. 2024

노송을 바라보며

안최호 작가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노송을 바라보며





                                  안최호







새벽의 고요를 깨고 산길을 걸어간다. 백 년, 아니 천 년의 세월을 이겨냈을까? 산속 어딘가, 아침 햇살이 깃드는 곳에 한 그루의 노송이 우뚝 서 있다. 비바람을 견뎌내고 타는 듯한 태양을 가르며 그 수많은 세월을 넘어온 노송의 자태는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껍질마저 세월에 단련되어 단단하고 투박한데,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그 가지들은 마치 천년의 선비가 품고 있는 고고한 기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기골이 장대하고 우람한 노송. 거센 바람이 몰아치거나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도 노송은 흔들림이 없다. 그 무게를 견디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며 말없이 서 있는 그 모습은 자연이 빚어낸 조각 작품 같다. 흔들림 없이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노송은 오랜 세월 그 어떤 것도 그를 휘지 못했으리라. 묵묵히 서 있는 노송은 마치 옛 선비의 고고함을 보여주는 듯, 그 깊고 푸른 기운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편안하게 감싼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솔잎이 휘날려도, 그 움직임 속에는 노송의 속삭임이 없다. 오히려 그 바람결에 묻혀 조용히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는 것 같다. 백 년이든 천 년이든 노송은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 있다. 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일 뿐, 노송의 굳센 뿌리는 변함없이 그 땅을 지키며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

우리네 인생이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윤회의 굴레라면, 노송의 삶은 그저 한 곳에 뿌리내리고 영원을 향해 뻗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노송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그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나무껍질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그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조차 모른 채, 그냥 이 묵묵한 존재 앞에 경배하는 마음뿐이다.

노송을 바라볼 때면, 문득 따스한 어머니의 품을 떠올리게 된다. 어머니가 아들을 품에 안고 따뜻하게 감싸주듯, 노송은 굳건하고 푸르게 솟아 있어 우리에게 안식을 준다. 그 자태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영원한 고향처럼 다가온다. 우리 인생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또 영혼으로 변하며 무수한 세월을 넘어가도 노송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그 자리를 지키며 말없이, 그리고 영원히.

장심리에서 우람하게 서 있는 노송을 바라본다. 바람이 일고, 솔잎이 흩날리는 순간에도 노송은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서 있다. 그 굵고 두터운 나이테의 무게는 우리 모두의 삶의 무게와도 닮아 있다. 떠나고 돌아오는 삶의 굴레 속에서 노송은 오직 하나의 진리를 말해준다. 삶이란 견뎌내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무수한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서 있는 노송은 그러한 삶의 진리와 가치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저 고요히 서 있을 뿐인데도 노송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아침 햇살이 그 위로 비치면 노송은 그 기운을 받아들이고, 바람이 불어오면 노송은 그 움직임을 품어낸다. 그 옛날 선비들이 그러했듯, 노송은 고요하면서도 깊고, 청명한 하늘을 닮았다. 그 품에 기대어 잠시 편안한 안식처를 찾고 싶어진다.

장심리의 푸르른 노송은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굳센 생명의 상징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든지, 노송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우리에게 속삭일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시간은 흐르지만 그 소나무는 언제까지나 그곳에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최호의 시 "늙은 소나무[老松]"는 단순한 자연 관찰에 그치지 않고, 깊은 철학과 인생관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이 그려낸 노송은 고난과 세월을 버텨낸 굳건한 생명력이자, 인생을 꿰뚫어 보는 선비의 지혜를 지닌 존재로 표현된다. 이 시의 모든 구절은 자연을 넘어 인간의 삶과 철학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며, 노송을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일깨워준다.

먼저, 시는 노송의 겉모습을 통해 삶의 고난을 드러낸다. 수백 년, 어쩌면 천 년의 시간을 견뎌낸 노송은 바람과 비, 태양의 뜨거움에도 굴하지 않는다. 인간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로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마주한다. 시인은 노송의 삶과 인간의 삶을 대조하면서도 병치시키며, 이 모든 시련이 결국 시간 속에서 단련되어 더욱 견고해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비바람과 무더운 태양은 노송의 생명을 위협하는 동시에 그것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재료가 된다. 이런 시련이 쌓인 결과로 노송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고, 이는 흔들리지 않는 꿋꿋함을 상징한다.

노송이 바람에 흔들려도, 그 속내는 변함없이 고요하고 견고하다. 시인이 노송의 이 모습을 담아내는 것은, 인간 또한 외부의 시련과 흔들림 속에서도 내면의 고요함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겉으로는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근원에는 흔들리지 않는 가치와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 년이든 천 년이든 한 자리를 지키는 노송처럼, 인간의 삶에도 흔들림 없는 중심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철학이 노송의 비유를 통해 드러난다.

또한 이 시에서 작가는 "노송"을 과거의 선비의 기상과 연관 짓는다. 고고하고 올곧은 기상을 지닌 선비는 세속적인 욕망과 잡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인물이다. 이와 같은 노송의 존재는, 시인의 가치관에서 보면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삶의 도를 전하는 스승과 같은 존재이다. 노송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서 있는 모습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지향점을 일깨워주며, 그 위로 비치는 청명한 가을 하늘은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안식처가 된다. 작가는 이러한 노송의 모습에서 인간의 고고함과 더불어 마음의 편안함을 얻으며, 이는 곧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이상과 가치로 이어진다.

특히 시에서 "우리네 인생 떠나고 다시 오는 윤회의 쳇바퀴 일지라도"라는 구절은, 인생의 무상함과 영원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인간의 삶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며 반복되는 윤회의 한 부분이지만, 그 속에서도 변치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노송이 지키는 가치이며,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인생의 본질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변하지만, 그 안에서도 불변하는 가치와 진리가 존재한다. 작가는 노송을 통해 그러한 영원한 가치를 바라보고, 그 앞에서 묵묵히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싶어진다고 고백한다. 이는 노송이 주는 가르침과 힘이 작가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노송의 존재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과도 같다. 거친 세월을 견뎌낸 노송은 그 모든 시련을 끌어안고 품어내며, 바라보는 이들에게 따스한 안식과 위로를 준다. 마치 어머니의 넓은 품처럼, 노송은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조용히 감싸주고 지켜준다. 작가의 시선은 노송을 넘어 우리 삶에 깊이 뿌리내린 존재의 근원으로 향하고, 그 근원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평화로운 상태를 바라본다. 영원히 한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노송은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말없이 전달한다.

이렇듯 안최호의 "늙은 소나무"는 노송을 통해 인생의 굳건함과 고요함, 그리고 영원한 가치를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의 철학과 가치관은 노송의 삶과 닮아 있다. 바람에 흔들리고 눈에 덮여도 그 자리를 지키는 노송처럼, 삶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걷는 것.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이자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그 자리를 지키며 우뚝 서 있는 노송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한 가치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일깨워준다. 삶이 비록 윤회의 굴레 속에 있더라도,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마음과 중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노송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영원의 철학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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