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는 한 밤중ㅡ 정덕현 시인
정덕현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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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는 한 밤중
시인 청운靑雲 정덕현丁德鉉
섬 아닌 섬 오이도
해 떨어진
오이도는 불야성이다
추석명절을 보낸 며칠 뒤
맞이한 일요일 밤
한순간 꽃밭이 된 네온사인
열대야로 찌는 밤바다도
뒤돌아선 밤공기가 을씨년스럽다
지칠 줄 모르고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마음 변한 첫사랑처럼
하룻밤사이 계절이 바꿨다
성업 중이던 에어컨
온종일 돌아가던 선풍기 코드도 빠져있다
오이도 빨간 등대는
여객선 없는 밤바다를 지키며
낮술을 했는지 얼굴이 붉다
시샘이라도 하듯
멀리 건너다 보이는 송도신도시
도깨비 줄 선 네온 밤 풍경은
아름답기보다는
찬란한 별빛이다
집 없는 갈매기는 밤바다를
어디로 가는지 날갯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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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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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덕현은 일상과 자연,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과 세상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작가다. 그의 시는 현실의 풍경을 깊은 성찰과 따뜻한 감성으로 담아내며, 평범한 것에서 비범한 의미를 찾아내는 특징이 있다. '오이도는 한 밤중'은 이러한 작가의 특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이도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시적 화자의 감정과 사색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일상 속 풍경과 삶의 변화, 감정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섬 아닌 섬 오이도 / 해 떨어진 / 오이도는 불야성이다"
첫 연은 섬이면서도 육지와 연결된 오이도의 독특한 정체성을 부각한다. 섬이면서도 섬이 아닌 오이도는 경계의 모호함과 함께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해가 지고 나면 불빛이 가득한 '불야성'의 모습은 도시의 화려한 밤과 대조적인 자연의 풍경을 암시하며, 섬의 고요함과 도심의 번잡함을 동시에 내포한다. 이로써 시는 도심의 낭만과 이면에 깔린 쓸쓸함을 암시하며 시작된다.
"추석명절을 보낸 며칠 뒤 / 맞이한 일요일 밤"
추석이라는 큰 명절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점의 공허함과 차분함이 느껴진다. 가족과 함께 보내던 명절의 따뜻함이 지난 후, 일요일 밤의 조용하고 쓸쓸한 풍경이 오이도의 밤과 겹쳐진다. 이는 흥청망청했던 시간 이후의 고독한 일상의 모습을 환기하며, 명절 뒤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적 배경이 주는 감정의 여운을 담고 있다.
"한순간 꽃밭이 된 네온사인 / 열대야로 찌는 밤바다도 / 뒤돌아선 밤공기가 을씨년스럽다"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오이도의 밤은 마치 꽃밭처럼 화려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한순간의 것일 뿐이며, 뜨거웠던 여름밤의 열기는 지나고 이제는 을씨년스러운 밤공기가 스며든다. 이 표현은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경계에 선 시적 화자의 감정을 보여준다. 화려함 속에 숨어 있는 고독과 공허함,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칠 줄 모르고 /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여름의 활기와 뜨거운 밤의 열정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지만, 계절의 변화는 그 모든 것을 일순간에 바꾸어 놓는다. 시인의 섬세한 시선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변해가는 감정과 풍경을 투영하며,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마음 변한 첫사랑처럼 / 하룻밤사이 계절이 바꿨다"
첫사랑의 감정이 한순간에 변해버리는 것처럼, 계절도 순식간에 바뀌어버린다. 사랑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교차시켜 표현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하룻밤 사이 바뀌는 계절은 삶의 예측 불가능함과 변화를 상징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무상함을 나타낸다.
"성업 중이던 에어컨 / 온종일 돌아가던 선풍기 코드도 빠져있다"
한여름 내내 쉬지 않고 돌아가던 에어컨과 선풍기의 역할이 끝난 장면은 계절의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더위 속에서 활발히 작동하던 것들이 이제는 정지한 상태로, 열기가 사그라진 오이도의 밤 풍경과 함께 계절의 흐름과 일상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오이도 빨간 등대는 / 여객선 없는 밤바다를 지키며 / 낮술을 했는지 얼굴이 붉다"
오이도의 빨간 등대는 밤바다를 지키는 역할을 하지만, 여객선이 없는 쓸쓸한 밤의 풍경을 보여준다. 낮술을 한 것처럼 붉은 등대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외로움과 낭만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는 등대라는 상징을 통해 고독과 의무감, 그리고 무언가를 지켜내는 존재의 애잔함을 표현하고 있다.
"시샘이라도 하듯 / 멀리 건너다 보이는 송도신도시 / 도깨비 줄 선 네온 밤 풍경은 / 아름답기보다는 / 찬란한 별빛이다"
오이도의 밤 풍경과 대조적으로 송도신도시의 화려한 네온은 경쟁하듯 빛난다. 이 대비는 밤하늘의 별빛과 인공적인 도시의 불빛을 겹쳐 놓으며, 아름다움을 넘어선 과시적이고 화려한 현대 도시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 찬란함은 오히려 별빛처럼 차갑고 멀게 느껴진다. 이는 도시의 화려함이 가지는 속 빈 강정과 같은 공허함을 암시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공적인 것의 대비를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시인의 통찰을 보여준다.
"집 없는 갈매기는 밤바다를 / 어디로 가는지 날갯짓이다"
밤바다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는 집이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는 삶의 방황과 끝없이 이어지는 노정, 그리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인생의 미로를 상징한다. 갈매기의 날갯짓은 그 자유로움 속에 담긴 고독과 불안정함을 나타내며, 시인이 바라보는 인생의 불확실성과 경계에 서 있는 감정을 대변한다.
이 시는 '오이도'라는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하여 시적 화자의 감정과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화려한 도시의 밤풍경과 그 이면의 쓸쓸함을 대비시킴으로써 현대 도시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또한, 자연의 변화를 통해 삶의 무상함과 불확실성을 묘사하며, 인간의 감정과 자연의 변화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시의 표현은 감각적이고 풍부하며, 화려함과 쓸쓸함, 고독과 자유로움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이도는 한 밤중'은 한순간의 감정과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독자로 공감과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삶의 덧없음과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다양성을 고요하게 그려내고 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