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구름꽃 ㅡ 시인 홍중기
홍중기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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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구름꽃
시인 홍 중 기
수천 년이 지나도
불암산은 저기 있다
뒤로는 도봉산 수락산을
이웃하고 바위로 옷을 입고
앉아 있다
오늘도 사람 산짐승들이
오르고 내린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바위로만 근엄하다
하늘꽃구름은 도봉산을 지나
불암산을 찾아 꽃구름을 띄우고
산을 오르는 사람 도토리를
입에 물고 엉거주춤하는 다람쥐들의
눈빛을 마주치며
곱게 흔들리는 구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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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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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중기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삶과 시간의 흐름을 시 속에 유려하게 녹여내는 중진 작가이다. 그의 시에는 자연 속에 담긴 삶의 본질과 인간의 모습이 깃들어 있으며, 이러한 주제 의식은 단순한 자연 묘사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인 사유와 깊은 감성을 담아낸다. 작가는 대자연의 웅장함과 경이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생명체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통해 삶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 시 또한 불암산이라는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인간과 자연의 만남을 담고 있으며, 그 속에 깃든 아름다움과 삶의 여유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수천 년이 지나도 / 불암산은 저기 있다"
시간의 흐름에도 불암산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진리를 담아낸다. ‘수천 년’이라는 표현은 자연의 영속성과 불변성을 강조하며, 인간의 덧없는 삶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을 동시에 전한다.
"뒤로는 도봉산 수락산을 / 이웃하고 바위로 옷을 입고 / 앉아 있다"
불암산은 도봉산과 수락산을 이웃으로 삼고, 바위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자연의 정적과 웅장함을 강조한다. 불암산의 모습은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무생물인 바위임에도, ‘옷을 입고 앉아 있다’는 의인화적 표현으로 인해 하나의 존재로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표현은 자연을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잘 드러낸다.
"오늘도 사람 산짐승들이 / 오르고 내린 발자국은 보이지 / 않고 바위로만 근엄하다"
산을 오르는 사람과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과 동물이 자연 속에서 흔적을 남기지 못할 만큼 거대하고 불변한 자연의 존재를 부각하는 표현이다. 반면에 ‘바위로만 근엄하다’는 구절은 불암산의 견고함과 장엄함을 나타내며, 자연은 인간의 발자국을 쉽게 지워버리는 영속적인 존재임을 드러낸다.
"하늘꽃구름은 도봉산을 지나 / 불암산을 찾아 꽃구름을 띄우고"
구름이 도봉산을 지나 불암산 위로 흐르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 피어난 꽃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꽃구름’이라는 시적 언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드러내며, 불암산의 웅장함과 대비되는 구름의 가벼움과 섬세함을 함께 담아낸다. 이는 자연이 보여주는 다양한 측면과 그것이 인간에게 주는 다채로운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산을 오르는 사람 도토리를 / 입에 물고 엉거주춤하는 다람쥐들의 / 눈빛을 마주치며"
산을 오르는 사람과 다람쥐가 눈빛을 마주치는 장면은 자연과 인간이 조우하는 순간의 친밀함과 경이로움을 나타낸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물고 엉거주춤하는 모습은 자연의 생명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장면이며,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통해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아름다움과 생명에 대한 찬미가 드러난다. 이는 작가가 자연의 소중함과 그것이 주는 생동감,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예찬하는 사유를 담아낸 것으로 해석된다.
"곱게 흔들리는 구름꽃"
마지막 행에서 ‘곱게 흔들리는 구름꽃’은 자연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흔들린다’는 표현은 정적인 풍경에 동적인 요소를 부여하며, 구름이 바람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전체 시의 흐름을 부드럽게 마무리하며, 자연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홍중기의 시는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 속에 삶의 모습을 녹여내며, 그 속에 담긴 철학적 가치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불암산 구름꽃’은 산과 구름,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자연의 불변성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작가의 시적 표현은 단순한 자연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깃든 삶의 본질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꽃구름’과 같은 시어는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부드러운 생명력을 형상화하며, ‘근엄하다’는 표현은 자연의 거대함과 견고함을 나타낸다. 시 전체에 흐르는 유기적인 자연의 흐름과 조화로운 풍경은 작가의 시선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소소한 행복에 머무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감성적인 묘사와 더불어 작가의 자연 철학은 시를 읽는 이로 마음의 여유와 평온함을 느끼게 하며,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홍중기 시인의 ‘불암산 구름꽃’은 누구나 산과 자연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일상의 감동을 시적 언어로 승화시켰으며,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력의 가치를 노래하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어와 유려한 감성적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자연의 경이로움과 삶의 여유를 함께 제공하는 아름다운 시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