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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무無

성미영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나, 무無



시인 성미영







숨을 쉬는 것만으로
선을 행하는 거였어요
죽어서도 종이로 남은 하얀 몸뚱이 누군가와 당신의 역사로 이야기하는 수많은 언어, 문득
숲이 그리워져요

가만히 서서 한여름의 뙤약별을 견디는 일
당신을 생각하면 울컥해져요
죽어서도 남긴 당신의 부드러운 몸 엎질러진 기름을 닦다가
더러움까지 안고 가는 당신을 생각해요 숲으로 달려가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요

성자처럼 눈보라를 건너는 당신
견고한 정신 안으로 새긴 무늬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시를 쓰다가
그 많은 생각 보듬은 책장을 바라봐요
끝없이 자신을 지우며 살아나는 당신

나를 없애며
끊임없이 나로 살아나고 싶은 나
나, 무無에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성미영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녀는 시 속에서 ‘무無’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는 것을 통해 자기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를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그는 자연 속에서 자신을 비우며,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로 다시 살아나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경험한 상실감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드러나며, 이는 그가 일상과 삶 속에서 무無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면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 / 선을 행하는 거였어요"

첫 행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행위인 '숨 쉬는 것'을 단순히 육체적 행위로 넘기지 않고, 선善의 실천으로 승화시킨다. 성미영 시인은 생명이 존재하는 자체가 선한 행위임을 암시하며, 존재 자체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행에서는 삶의 기본적인 행위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철학적 성찰이 깃들어 있다.

"죽어서도 종이로 남은 하얀 몸뚱이 / 누군가와 당신의 역사로 이야기하는 수많은 언어, 문득 / 숲이 그리워져요"

여기서 '죽어서도 종이로 남은 하얀 몸뚱이'는 시인이 생명과 죽음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말하는 바가 크다. 종이는 기록의 매개체로, 죽어서도 남아 있는 육체적 흔적을 나타낸다. 이러한 흔적들이 '누군가와 당신의 역사로 이야기하는 수많은 언어'로 표현되면서, 시인은 자신의 존재가 끝없이 전달되고 해석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숲이 그리워진다'는 문장을 통해 자연 속에서의 평안함과 고요함, 그리고 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가만히 서서 한여름의 뙤약별을 견디는 일 / 당신을 생각하면 울컥해져요"

‘한여름의 뙤약별’은 시련과 고통을 상징하며, 그것을 견디는 것은 시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든 과정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생각하면 울컥해진다'는 감정의 고백은 시인이 특정한 인물 혹은 존재에게 느끼는 깊은 감정적 교감을 나타낸다. 여기서 '당신'은 구체적인 인물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 혹은 자연 그 자체일 가능성도 있다. 이때 울컥함은 시적 주체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감정의 분출이다.

"죽어서도 남긴 당신의 부드러운 몸 / 엎질러진 기름을 닦다가 / 더러움까지 안고 가는 당신을 생각해요"

여기서 '부드러운 몸'은 세상에 남겨진 순수한 흔적을 의미하며, 그 흔적조차도 세상의 더러움까지 포용하는 존재로 해석된다. 시인은 엎질러진 기름을 닦는 과정을 통해 더러움과 상처를 인정하고, 그것마저도 함께 끌어안고 가는 존재를 떠올린다. 이는 시인의 가치 철학 중 하나로, 세상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순수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다.

"숲으로 달려가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요"

'숲'은 자연 그 자체로서 시인의 내면적 회복을 상징하며, '한 그루 나무'는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은 시인의 소망을 담고 있다. 이는 인간 존재의 일부분이 아닌, 전체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소망을 드러낸다. 여기서 성미영 시인은 자신을 비우고 자연의 일부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성자처럼 눈보라를 건너는 당신 / 견고한 정신 안으로 새긴 무늬"

'성자처럼'이라는 표현은 이상적인 인간상이나 초월적인 존재를 지칭하며, 그런 존재가 역경을 딛고 나아가는 모습을 눈보라에 비유하고 있다. '견고한 정신 안으로 새긴 무늬'는 그 역경을 겪으며 생긴 흔적이 결국은 그 존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고통과 시련을 통해 더 강해지는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시를 쓰다가 / 그 많은 생각 보듬은 책장을 바라봐요"

일상적이고 정적인 장면을 묘사하지만, '많은 생각을 보듬은 책장'은 시인의 내면세계를 상징한다. 책장이란 외부적으로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일 수 있지만, 시인은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생각과 감정의 깊이를 표현하고 있다. 이는 시인 자신이 경험한 지식과 감정, 사유의 축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끝없이 자신을 지우며 살아나는 당신"

이 행에서는 무無의 철학이 강하게 드러난다. '자신을 지우며'란 말은 자신의 자아를 비우고, 그것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한다. 시인은 여기서 완전한 자기 부정과 소멸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내면적 열망을 드러낸다.

"나를 없애며 / 끊임없이 나로 살아나고 싶은 나 / 나, 무無에요"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자신을 부정하면서도 계속해서 나로 살아나고 싶은 모순된 욕망을 드러낸다. 여기서 '무無'는 단순한 부정적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을 무로 만들고, 그 무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담고 있다.

성미영 시인의 시 "나, 무無"는 무無의 철학을 깊이 탐구한 작품으로, 시인은 자신의 존재를 비우고자 하는 열망과 그것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는 자연, 고통, 그리고 존재의 부재 속에서 스스로를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 표현상으로는 단순한 일상적 이미지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철학적 깊이를 섬세하게 풀어내며, 감정과 이미지의 유기적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상처와 더러움마저 포용하며, 존재의 부재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끊임없는 의지를 드러낸다.



성미영 시인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근에 시인님의 시집을 접하게 된 독자입니다. 특히 시집에 실린 "나, 무無"라는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글을 통해 시인님의 세계와 철학을 엿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제 안에 여러 생각이 차오르며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나, 무無"는 단순한 시가 아니라, 시인님께서 스스로를 비우고 그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담은 철학적 탐구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줄 한 줄이 읽을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어, 저에게 존재의 의미와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숨 쉬는 것만으로 선을 행한다는 첫 구절에서부터 저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선善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되었고, 이는 매우 소중한 깨달음이었습니다.

특히 시 속에서 '숲으로 달려가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다'는 대목은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자연과 하나 되고 싶은 시인님의 소망이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마치 저 또한 그 숲 속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번잡함과 소란이 사라지고, 고요한 평온 속에 잠긴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를 읽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이 정적인 고요함과 동시에, 시인님께서 표현하신 역동적인 감정의 흐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더불어,

시에서 표현된 '성자처럼 눈보라를 건너는 당신'이라는 구절은 시인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마주하면서도 꿋꿋이 나아가는 인간의 강인한 정신을 바라보는 시인님의 시선은 매우 따뜻하면서도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눈보라 속을 걷고 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를 읽으며 가장 큰 감동을 받은 것은 바로 시인님께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하며 다시 살아나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나를 없애며 끊임없이 나로 살아나고 싶은 나'라는 구절은 시인님의 자기 성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었으며, 이러한 마음가짐이 저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자주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하지만, 시인님의 시를 통해 저 또한 스스로를 비우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깊이와 감정적 섬세함에 대해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시인님의 글은 단순한 언어의 나열이 아닌, 치열한 사유와 내면의 성찰이 담긴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앞으로도 시인님의 작품을 더 깊이 읽고 탐구하고자 하며, 이러한 감동을 다른 독자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시간 내어 이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시인님의 작품이 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시인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또 다른 멋진 작품으로 만나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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