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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두 손 모아 기도하게 하소서 ㅡ 박철언 시인

청민 박철언 시인과 문학 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을에는 두 손 모아 기도하게 하소서



시인 박철언







무성하고 무덥던 여름은 가고
산이며 언덕, 강물이며 곡식이며
가을 햇살에 모든 것이 익어간다
가을바람에 나무들도 홀로 설 준비를 한다

노을빛 물든 단풍의 계절에
거리에는 낙엽들이 흩날리며 죽어가고 기차역에서 먼 공항에서 이별이 시작된다
준비되지 않은 가슴은 눈물에 젖는데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아야 하는 시간
기다림은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밀려온다

다시 보고 싶은 황홀한 슬픔 같은 풍경들
하이드 파크의 교훈, 자이언 캐년의 여로
워싱턴 죠지타운거리, 보스턴의 찰스 강변 산책길
샌디에이고 라홀라 해변의 새벽길 대관령 용평의 모나파크, 석굴암 가는 꼬불꼬불 단풍길

떠나고 오지 않는 사람 때문에 익어가고 죽어가는 대 자연 때문에 살을 저미는 외로움 속에
이 가을에는 방황하지 않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하게 하소서







문학평론가ㆍ시인 청람 김왕식






박철언 시인의 삶과 이 시와의 연결
박철언 시인은 정치와 사회 활동에 오랜 기간 몸담았으나, 시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자연에 대한 성찰을 끊임없이 탐구해 온 인물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인생의 무상함과 고독, 자연과 인간이 교차하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일상의 풍경들 속에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는 시적 감각은 그의 시에서 두드러지며, 삶을 통찰하는 철학적 깊이가 담겨 있다. 이번 시 '가을에는 두 손 모아 기도하게 하소서'에서도 시인은 가을의 풍경을 배경으로 삶과 이별, 기다림, 기도라는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주제를 탐구한다. 그의 경험과 철학이 녹아들어 자연과 인생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된 모습이 두드러진다.

"무성하고 무답던 여름은 가고 / 산이며 언덕, 강물이며 곡식이며 / 가을 햇살에 모든 것이 익어간다"

여름의 풍요와 무성함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며, 자연의 모든 요소들이 익어가는 과정이 묘사된다. 이 구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이 성숙하고 완성되는 것을 상징하며, 인생의 한 주기가 완성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무답’이라는 표현은 답을 찾지 못한 채 흘러간 시간과도 연결된다.


"가을바람에 나무들도 홀로 설 준비를 한다"

이 구절은 홀로 서는 준비를 하는 나무들을 통해 인간의 독립과 자아의 완성을 암시한다. 나무가 잎을 떨구고 홀로 서듯, 인간도 혼자서 맞이해야 할 삶의 순간들이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는 이별과 고독을 상징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준비하는 시간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노을빛 물든 단풍의 계절에 / 거리에는 낙엽들이 흩날리며 죽어가고 / 기차역에서 먼 공항에서 이별이 시작된다"

가을의 단풍과 낙엽, 이별의 장소가 교차하며 시간의 비극성과 감정적 소멸이 드러난다. 이 장면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허망함이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공항과 기차역은 이동과 분리의 상징으로 사용되며, 삶의 필연적인 이별을 예고한다.

"준비되지 않은 가슴은 눈물에 젖는데 /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아야 하는 시간"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운명은 가을의 이별과 맞물려 강렬한 감정선을 형성한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서 인간은 항상 무력하며, 이 구절은 그 비극적 측면을 부각한다. 이는 삶의 불가피한 선택과 인연의 법칙을 암시한다.

"기다림은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밀려온다"

이 구절은 이 시의 壓卷이다.

기다림이 주는 고통이 사랑의 기쁨보다 크다는 역설적 진술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이는 시인이 체험한 삶의 깊은 고독과 아픔을 담고 있으며, 사랑의 이면을 묘사하는 시적 표현으로 독특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보고 싶은 황홀한 슬픔 같은 풍경들 / 하이드 파크의 교훈, 자이언 캐년의 여로"

시인은 과거의 경험들을 ‘황홀한 슬픔’으로 묘사하며, 여행지의 풍경들을 통해 인생의 교훈을 전한다. 이 구절은 여행과 체험이 단순한 기억을 넘어 인생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계기임을 보여준다.

"워싱턴 죠지타운거리, 보스턴의 찰스 강변 산책길 / 샌디에이고 라홀라 해변의 새벽길 / 대관령 용평의 모나파크, 석굴암 가는 꼬불꼬불 단풍길"

이 구절은 각기 다른 지역과 문화의 이미지를 통해 시인의 넓은 경험 세계를 드러낸다. 다양한 장소가 지닌 정서와 감정이 얽혀, 시인은 인생의 복합적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떠나고 오지 않는 사람 때문에 익어가고 / 죽어가는 대 자연 때문에 살을 저미는 외로움 속에"

사람의 부재와 자연의 소멸이 시인에게 큰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이는 가을의 숙명과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로 인한 고독을 절절하게 묘사한 대목이다.

"이 가을에는 방황하지 않게 해달라고 / 두 손 모아 기도하게 하소서"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방황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는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도 평온을 찾으려는 인간의 내면적 갈망을 상징한다.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를 넘어 자기 성찰과 평화를 향한 소망으로 해석된다.

이 시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통해 인생의 이별과 기다림, 그리고 고독을 탐구한다. 박철언 시인은 단순한 자연 묘사에 머물지 않고, 자연과 인생을 결합시켜 깊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시 속의 다양한 장소와 경험들은 인생의 단면을 형상화하며, 독자는 시인의 체험 속에서 보편적 인간 경험을 공감하게 된다.
특히 이별과 기다림, 기도라는 주제는 인생의 불확실성과 필연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감정의 흐름과 철학적 사유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표현 방식에서도 시인은 반복적인 이미지와 장소를 통해 감정의 심화를 유도한다. 다양한 장소들이 주는 개별적 정서가 모여 시 전체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이는 시인의 독창적인 감각을 잘 드러낸다. 또한 시적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이며, 직설적인 표현 안에 묵직한 의미가 숨어 있다.

박철언 시인의 시는 감정의 격류 속에서도 방황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한다. 이는 결국 인간이 맞이하는 가을, 즉 인생의 황혼 속에서도 희망과 성찰을 잃지 않으려는 소망을 담아낸 것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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