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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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두
시인 안혜초
와지직
한 입 깨물으면
피가 날 듯한
피자두
피자두는 왜
피자두가 되었을까
피자두나무에는 왜
피자두가 열리는 걸까
그리움 때문일까
기다림 때문일까
그리고 왜
피자두는
온몸에 피멍이 들어
태어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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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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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초 시인은 사물과 자연, 감정의 경계를 허물며 독창적인 시어로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안기는 원로 작가다.
그의 시에는 일상의 평범한 것들이 철학적 의미를 지니며 등장하고, 사소한 존재들 속에서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그리움이 드러난다. 이처럼 그가 창조하는 시어는 감각적이면서도 심리적 탐구를 바탕으로 하고, 대상을 통해 감정과 생각의 여운을 극대화한다.
시 '피자두'에서도 간단한 과일을 매개로 기다림과 그리움의 감정을 상징화하며, 독자로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이는 안혜초 시인의 특징인 감각과 철학의 조화를 통해, 작은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이 어떻게 삶의 큰 울림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와지직"
첫 행은 갑작스럽고 생생한 소리를 묘사하며 독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는 시각이나 청각을 넘어 촉각적인 느낌까지 전달하며, 무언가 깨지는 순간의 긴장감을 상기시킨다. 시의 시작을 이처럼 강렬한 의성어로 설정한 것은 독자의 관심을 즉각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감정의 분출이자 깨달음의 시작일 수 있다.
"한 입 깨물면 피가 날 듯한 피자두"
피자두의 붉은색은 생명과 피를 연상시킨다. 과일을 깨물 때 나오는 붉은 즙은 피처럼 묘사되며, 이는 단순한 과일의 맛을 넘어 삶의 아픔과 고통을 상징한다. 동시에 이 행은 일종의 생명력에 대한 비유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통해 자신을 직면하는 순간을 표현한다. 피자두를 먹는 행위는 곧 삶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받아들이는 태도로도 읽을 수 있다.
"피자두는 왜 피자두가 되었을까"
이 문장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름과 존재를 탐구하는 이 행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라 삶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읽힌다. 사물의 이름이 어떻게 정해지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존재 이유와도 연결된다. 피자두라는 존재는 고유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피자두나무에는 왜 피자두가 열리는 걸까"
이 행은 자연의 이치를 묻는 동시에 존재의 필연성을 탐구한다. 왜 피자두나무에 피자두가 열리는지 묻는 것은 마치 왜 인간에게 특정한 감정과 경험이 주어지는지 묻는 것과 같다. 이는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 질문 속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시인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그리움 때문일까 기다림 때문일까"
이 행에서는 피자두를 그리움과 기다림의 상징으로 치환한다. 그리움은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감정이고, 기다림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한 기대다. 시인은 피자두를 통해 현재와 과거, 미래의 감정을 동시에 드러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 준다. 이처럼 한 과일을 중심으로 삶의 복잡한 정서를 압축해 낸 시인의 표현은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이며 사물과 감정을 연결하는 방식이 독창적이다.
"그리고 왜
피자두는
온몸에 피멍이 들어
태어나는 걸까"
이 구절은 단순히 자연현상을 묘사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 더 깊은 상징과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왜"라는 구절은 독자에게 일상적인 물음처럼 보이지만, 이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왜'라는 물음은 세상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를 탐구하려는 인간의 깊은 궁금증을 담고 있다.
"피자두는 온몸에 피멍이 들어 태어나는 걸까"는 자두의 외형적 특성에 주목하면서도, 그 이미지를 통해 삶과 고통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자두의 붉은색은 상처나 멍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태어남과 동시에 겪는 고통이나 상처를 상징할 수 있다. 자두가 태어날 때 이미 온몸에 멍이 들어 있다는 표현은 마치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는 비유처럼 다가온다. 태어남과 고통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자두의 붉은색과 피멍의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연결로 이어진다.
이 구절은 삶의 본질, 즉 생명과 고통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에 대한 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시는 피자두라는 일상의 과일을 통해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과일이 지닌 감각적 이미지와 피와 같은 생생한 묘사는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며 동시에 심리적 울림을 준다. 특히 피자두의 붉은색 이미지는 강렬한 생명력과 아픔을 동시에 상징하며, 이는 시의 전체적인 정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시인은 일상의 사물에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통해 독자에게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안혜초 시인의 시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다. '피자두'는 겉으로는 사소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 안에는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이 숨어 있다. 시인은 존재의 의미와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며, 이를 일상 속에서 발견해 내는 방식을 선택한다. 또한 시 전체의 흐름은 각 행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질문과 답변의 구조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찾도록 이끈다. 이러한 흐름은 시인의 가치 철학을 잘 드러내며,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삶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안혜초 시인의 '피자두'는 일상 속 평범한 사물을 매개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시다. 단순한 과일에서 시작된 시어들은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시인의 표현은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이며, 사물과 감정을 연결하는 방식이 독창적이다.
이 시는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도록 돕는다. 감각적 묘사와 철학적 사유가 조화를 이루며, 각 행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 작품은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