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18. 2024
생각나는
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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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생각
시인 이창식
가을비 토닥토닥 길을 가면 옛 친구 피안의 안개로 걸어가고 세상이 제 혼자서 뒷걸음질한다 어쩌면 저나 나나 꿈길이리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호쾌한 너털웃음 한 판 벌일 듯 비눗방울처럼 솟는 옛 생각이 스스로 떴다가 가로등처럼 스치고 발아래 질척이는 리듬 따라 배꼽 잡고 껄껄대는 허수아비 떼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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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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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식 시인은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와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드러내는 시를 많이 썼다. 그는 특히 사람들 사이의 인연과 추억,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을 주제로 삼아,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시어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시인이다.
'친구 생각'은 그가 과거의 친구를 회상하며 느끼는 감정과 그로 인해 떠오르는 삶의 단면들을 담아낸 작품으로, 그가 살아온 경험이 진하게 배어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친구와의 교감 속에서 인간 본연의 유대와 시간을 초월한 감정의 흐름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첫 행 "가을비 토닥토닥 길을 가면"은 가을비가 내리는 상황 속에서 시작된다. 이 가을비는 현실과 추억을 잇는 매개체로,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빗방울 소리가 '토닥토닥'이라는 의성어로 표현된 것은 시인의 감각적인 면모를 보여 주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된다. 가을비는 삶의 지나가는 순간과 덧없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두 번째 행 "옛 친구 피안의 안개로 걸어가고"에서 시인은 친구를 피안의 안개로 표현한다. 이는 친구가 더 이상 가까이 있지 않음을 상징하며, 그리움과 거리를 느끼게 한다. 안개는 그 자체로 희미한 경계를 나타내며, 시인은 이 안갯속에서 친구를 찾아 헤매는 듯한 감정을 드러낸다.
"세상이 제 혼자서 뒷걸음질한다"는 문장은 시인의 내면적 혼란과 세상에서 소외된 감정을 드러낸다. 세상이 뒤로 물러가는 듯한 느낌은 자신만이 제자리에 서 있다는 고독감을 표현하며, 이는 친구의 부재로 인해 더욱 심화된 감정일 수 있다.
"어쩌면 저나 나나 꿈길이리"에서 시인은 친구와 자신이 모두 꿈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한다. 이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친구와의 기억이 마치 꿈처럼 아련하게 남아 있음을 상징한다.
"유붕자원방래 ~ 호쾌한 너털웃음"은 친구와의 옛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의 기쁨과 즐거움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한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는 논어 학이편 인용을 통해 그리움의 대상이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고 있으며, 너털웃음은 그 당시의 활기찬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비눗방울처럼 솟는 옛 생각이 스스로 떴다가 가로등처럼 스치고"에서는 비눗방울과 가로등이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친구와의 기억이 사라졌다가 다시 떠오르는 것을 표현한다. 비눗방울은 쉽게 터지며 사라지는 상징으로, 기억의 일시성과 덧없음을 나타내고, 가로등은 어두운 길에서 순간적으로 비추는 빛으로 기억의 희미함을 비유하고 있다.
"발아래 질척이는 리듬 따라"에서는 빗물이 고인 길 위에서 질척이는 느낌을 리듬에 빗대어 표현하며, 시인은 이 리듬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추억을 떠올린다. 이 질척이는 리듬은 반복되는 일상의 고단함과 연결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과거의 기억을 찾는 과정이 담겨 있다.
"배꼽 잡고 껄껄대는 허수아비 떼"는 허수아비라는 이미지로 친구들과의 웃음 가득한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허수아비는 본래 정적이지만, 여기서는 친구들의 생동감 넘치는 웃음과 대비되어 묘사되었다. 시인은 이 대조적인 이미지를 통해 지난 추억 속에서 느낀 즐거움을 더욱 부각한다.
마지막에 "친구들"이라는 단어로 마무리되는 이 시는 시인이 회상하는 대상이 분명해지며, 그 대상과의 깊은 감정적 연결이 강조된다.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들과의 과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이 한 단어 속에 응축되어 있다.
이 시에서 이창식 시인은 친구와의 추억을 통해 인간관계의 소중함과 삶의 일시성을 통찰하고 있다.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그리움과 고독, 그리고 즐거웠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으며, 시인은 이를 일상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들로 풀어낸다. 또한, 철학적으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으며, 이는 인간의 유한함과 연결된다.
시 전체의 유기적인 흐름 속에서 친구와의 관계와 그리움이 지속적으로 강조되며, 이러한 감정들이 마치 빗방울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