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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1. 2024

초막

문희 한연희 작가와 청람 김왕식

 








                     초막


                                    문희 한연희






  우리 집엔 사람들이 하룻밤 자고 싶어 하는 방이 있다.  1인용 침대만 있는 직사각형의 아주 작은 방이다. 출입문은 창호지를 바른 창살문에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만큼 작고, 반대편엔 화장실로 가는 더 작은 문이 있다.
한쪽 벽은 붙박이장, 다른 쪽 면은 전면 창으로 뒤뜰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서 작아도 갑갑하지 않다. 천장은 갈비뼈처럼 대들보가 드러나 있고 갈비뼈 사이엔 황토가 발라져 있다.
이 방엔 선풍기와 전등만 있다
전형적인 경기도 초가삼간 중에서 작은방이다.
오래되었으니 흙이 떨어지거나 습기 찬 흙벽이 내려앉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본래 큰딸 하나가 쓰던 곳인데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 대부분 빈방 상태다.
가끔 쉴 겸 누워있는 용도로 사용하다가 어느 봄날 이 방을 내가 쓰려고 전창도 닦고 한쪽 문 창호지를 뜯어냈다.
한 없이 단출한 방에서 새벽을 맞이하고 싶었다.

 기존에 쓰던 방도 한쪽 면이 전창이다.
전창 옆에 침대를 놓고 창밖 앞산을 내다보면 철 따라 바뀌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편은 늘 커튼 치는 걸 기본으로 여긴다.
방에 불 켜면 밖에서 다 보인다고 나무란다.
외딴집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본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
 보면 또 어떤가. 볼 게 뭐 있다고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다.
  커튼 문제로 실랑이를 하기보다 겨울엔 창이 없어 토굴 같은 안쪽 방으로 옮겨 겨울을 보내곤 했다. 겨울 지나 봄이 오면 작은 방으로 옮겨 봄이 오는 발자국을 살핀다.
누굴 데리고 오는지, 겨우내 딸린 식구가 늘었는지 살피다가 연두색 기미만 보여도 호들갑을 떤다.
철마다 날마다 변하는 바깥 풍경, 같은 날은 한번 없다. 눈 뜨자마자 누운 채로 뜰을 보면 마음이 오롯이 충만하다.

  좋은 점은 그뿐이 아니다.
우연히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되었지만, 장점이 어찌나 많은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첫째는 제멋대로 자거나 깨거나 들락거리는 자유를 누린다는 점이다.
한방을 쓰면 소소하게 투덜대기 마련이다.
생체리듬이 다른 두 사람이 한 침대를 쓰는 일은 비효율적이다.
지나치게 개인의 자유를 구속한다.
나이 들수록 다툼 없이 살며 상대방의 욕구를 존중하려면 안전거리를 둬야 한다.
오직 자연과 속삭이는 작은 방, 그 방이 내 마음에도 있다.
무슨 말을 하든 나무라지 않고 보듬어 주는 주님이 거기에 계시다.

나의 작은 초막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희 한연희의 수필 <초막>은 간결한 문체로 일상 속 작은 공간에서 느끼는 안식과 자유를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이 머무는 작은 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 안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행복과 일상의 여유를 표현한다. 작은 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자연과 교감하며, 내면의 평화를 찾는 장소로 그려진다.

수필에서 초반에 묘사된 방의 모습은 매우 구체적이다. 작고 단출한 방이지만,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 덕분에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천장의 대들보와 황토의 질감, 오래된 벽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공간에서 작가는 철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즐기며 자연의 흐름을 느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바깥세상은 그녀의 삶에 작은 설렘을 불러일으키며, 삶의 순간순간을 충만하게 한다.

작가는 또한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경험에서 발견한 자유와 편안함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한 방을 공유할 때 생길 수 있는 소소한 갈등과 불편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각자의 공간을 가지는 것이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서로의 생체 리듬을 존중하고 안전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수필의 마지막에서 작은 방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내면의 '초막'으로 확장된다. 그곳에는 주님이 계시며, 작가의 모든 감정을 품어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는 작가가 이 방에서 경험하는 평화와 안식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영적인 충만함과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전반적으로 이 수필은 일상의 사소한 공간에서 느끼는 삶의 의미를 차분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며, 작은 행복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여 몇 줄의 시로 정갈한 마음을 담아 바친다.





                    초막의 노래




작은 방에 머물면, 창문 밖으로
철마다 변하는 세상이 말을 걸어온다.
낮은 문을 지나면 갈비뼈 같은 대들보 아래,
내 마음의 숨소리가 황토 속에 스며들고,

빈방이 된 딸의 자리는, 이젠 내 안식처
바람이 머무는 그곳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나무라지 않는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방에서 벗어나 우리는 서로에게
안전한 거리를 둔다. 살아가며 배운 지혜,
자연과 나누는 속삭임이, 어느덧
내 안에도 작은 초막을 짓는다.

흙벽이 내려앉을 때마다
나는 더 단단히 주님께로 기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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