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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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농촌에서는
김왕식
어린 시절의 농촌 풍경은 이제도 마음속에 따뜻한 그림처럼 남아 있다. 시골길을 걷던 그때의 기억은 소중하고도 그리운 추억이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을 담아 어깨에 메고 학교를 향해 달리던 나날. 보자기 속 도시락은 정성스럽게 쌌지만, 김칫국물이 새어 나와 책에 스며들 때면 책은 시뻘건 물이 들어 두꺼워지곤 했다. 그럼에도 그 길을 달리던 어린 마음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학교에 도착하면, 도시락은 교실 난로 위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가끔 난로 아래쪽에 놓인 도시락은 숯처럼 타버리기도 했지만, 까맣게 탄 밥을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시간은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함께 나누던 밥 한 끼 속에서 우리는 가난함 속에서도 풍족한 마음을 누렸고, 작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 시절은 몸이 고달팠다. 버짐이 피어 얼굴이 거칠어졌고, 머리에는 이가 기어 다니곤 했다. 할머니는 그 이를 잡아 손톱으로 튕겨 화롯불에 넣고는 이가 타는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셨다. 그렇게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이었지만, 그 속에서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은 늘 따뜻했다. 간혹 마을 쌀장수 혹부리 아저씨 자전거 뒤에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추수한 들판에 벼 그루터기들이 저녁노을에 비쳐 반짝이는 그 장면은 마음 깊이 새겨졌다.
겨울 저녁, 마을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는 농촌의 하루가 끝나고 저녁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연기는 매캐했지만, 그 연기를 보며 가슴속에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서러움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했다. 가난했지만, 마음속 풍요로움을 느꼈던 그 시절. 할머니의 품에서,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나는 소중한 추억을 쌓아갔다.
어른이 된 지금, 그 시절의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때는 몰랐던 소중한 것들이 이제야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단순하고 소박했던 그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