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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2. 2024

유은희 시인의 '달의 배웅'을 청람 김왕식 평하다

유은희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달의 배웅       




                                 시인 유은희

                       



뒷골목 끝까지 밀려난 구멍가게 하나
아직 살아 있다 아흔여섯과 일흔넷이
복숭아처럼 물러가고 있다
그늘이 질척거려서 찾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 개척교회 젊은 목사가 들었다 가고
고양이들이 죽은 털을 솎고 간다
일흔넷이 아흔여섯을 평상 끝에 업어다 말리는
말렸다 노을 너머로 들이곤 한다
적막이 웃자란 집은
모서리란 모서리는 다 닳아서
내려앉은 잇몸으로 딱딱한 시간을 녹여 살고 있다
눅눅한 뒷방은 오봉 밥상의 오금을 간신히 펴
닳은 수저로 어둠을 파먹고 있다

죽은 내 아버지가 살아 있는 곳,
앙상하게 솟은 어깨가 살고
거뭇거뭇한 손등이 살고
하지정맥의 휜 다리가 산다
생의 뒤편으로 비켜난 흐린 눈빛이 살아간다
 
어쩌다 들러서 무른 것들 죄다 담아 오는 길
잇몸 움푹 꺼진 달 하나가 몇 걸음 뒤를 밟아오곤 한다







문학평론가ㆍ시인 청람 김왕식





유은희 시인은 현대적 감각과 전통적 이미지가 절묘하게 결합된 시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시는 주로 일상의 소외된 공간과 인물들,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삶의 잔잔한 비극성을 조명한다.

유은희 시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는 삶의 무게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의 작은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시 "달의 배웅"은 한적하고 낡은 뒷골목을 배경으로, 고독과 시간의 흐름 속에 묻힌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특히 생의 말미에 이른 노인의 삶과 그 속에서 작게나마 살아 있는 흔적들이 시의 주제의식을 형성하는 핵심이다.

 “뒷골목 끝까지 밀려난 구멍가게 하나 / 아직 살아 있다 아흔여섯과 일흔넷이 / 복숭아처럼 물러가고 있다”

이 부분은 사라져 가는 삶의 한 구석을 묘사한다. 구멍가게라는 공간은 이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낡고 소외된 공간으로 시인의 눈에 비친다. 여기서 "아흔여섯과 일흔넷"은 구멍가게 부모와 자식을 지칭하는 듯하며, 그들의 삶이 점점 쇠퇴해 가는 과정을 "복숭아처럼 물러가고 있다"는 부드러운 이미지로 표현했다. 시인은 노화와 쇠락을 복숭아라는 생동감 있는 과일과 연결지어 삶의 유한성을 담담히 표현한다.

 “그늘이 질척거려서 찾는 사람이 없다 / 어쩌다 개척교회 젊은 목사가 들었다 가고 / 고양이들이 죽은 털을 솎고 간다”

여기서는 고요함과 고독감이 강조된다. 그늘이 질척거리는 공간은 음습하고 찾는 이가 없는 곳이다. "개척교회 젊은 목사"는 이 구멍가게를 잠시 들렸다 떠나는 외부의 인물로, 이러한 장면은 구멍가게가 가진 소외된 위치를 더욱 부각한다.
이와 함께 고양이들이 등장하는 모습은 생명의 잔해들을 정리하는 상징적 이미지로 읽히며, 죽음을 암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일흔넷이 아흔여섯을 평상 끝에 업어다 말리는 / 말렸다 노을 너머로 들이곤 한다”

여기서는 세월의 흐름이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나이 든 두 인물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평화롭지만 동시에 슬픈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말렸다 노을 너머로 들이곤 한다"는 구절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의 일상이 마치 끝없는 반복처럼 펼쳐진다.

“적막이 웃자란 집은 / 모서리란 모서리는 다 닳아서 / 내려앉은 잇몸으로 딱딱한 시간을 녹여 살고 있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쇠락한 집의 모습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모서리가 닳고 잇몸이 내려앉은 모습은 삶의 껍질이 닳아 없어지는 느낌을 준다. 이처럼 시인은 인간의 삶을 시간이 깎아내리는 과정으로 묘사하며, 고요함 속에서 그리움을 표현한다.

 “눅눅한 뒷방은 오봉 밥상의 오금을 간신히 펴 / 닳은 수저로 어둠을 파먹고 있다”

여기서 "눅눅한 뒷방"은 삶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공간으로 읽힌다. 오봉 밥상과 닳은 수저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들은 세월 속에 삭아가는 존재들을 상징하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어둠을 파먹는다는 표현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애써 지탱하려는 모습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죽은 내 아버지가 살아 있는 곳, / 앙상하게 솟은 어깨가 살고 / 거뭇거뭇한 손등이 살고 / 하지정맥의 휜 다리가 산다”

이 부분에서는 개인적 서사가 등장한다. 죽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 곳은 과거의 기억 속이다. 앙상한 어깨와 휜 다리 등의 묘사는 아버지의 육체적 쇠락을 상기시키며, 그가 여전히 시인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개인의 기억이 죽음마저도 초월하는 생명의 연속성을 암시한다.

“어쩌다 들러서 무른 것들 죄다 담아 오는 길 / 잇몸 움푹 꺼진 달 하나가 몇 걸음 뒤를 밟아오곤 한다”

여기서는 달이 등장하는데, 이는 시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달은 시인의 뒤를 따라오는 존재로, 인생의 쇠락과 죽음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처럼 느껴진다. 잇몸이 꺼진 달은 그동안 많은 시간을 보냈음을 의미하며, 시인의 고독한 여정 속에서 달이 함께 한다는 것이 감정적으로 깊이 있는 마무리를 제공한다.

유은희 시인의 시 "달의 배웅"은 고독과 쇠락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구멍가게라는 공간과 노인의 삶은 시대와 사람들에게 잊힌 존재들을 상징하며, 그 안에서 시인은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시는 현실의 고통을 담담히 수용하면서도, 그 속에서 희미하게 살아 있는 흔적들을 포착하려는 시인의 섬세한 시각을 보여준다. 각 행마다 구체적 이미지와 상징들이 엮여 있으며, 시 전체의 흐름은 고요하지만 깊이 있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유은희 시인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근에 시인님의 작품 "달의 배웅"을 접하게 되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시를 읽는 동안 느꼈던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시인님께 직접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우선, 이 시에서 보여주신 삶의 섬세한 묘사와 감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낡은 구멍가게와 그곳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아흔여섯과 일흔넷이 복숭아처럼 물러가고 있다”는 표현에서는 시간의 무상함과 함께 노인의 생애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시인님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또한, 시 속에 등장하는 구멍가게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장면들은 한편으로는 매우 쓸쓸하면서도, 그 속에서 여전히 생명과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고양이들의 등장이나 개척교회 젊은 목사의 방문은 어쩌면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을 소소한 일상이지만, 시인님께서 이 장면들을 통해 드러내신 것은 그 일상의 소중함이었습니다.

시 후반부에서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묘사된 앙상한 어깨와 휜 다리의 모습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독을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아버지가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역설은 시의 전체적인 주제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에 대한 애틋함을 더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달"이라는 상징을 통해 시인님께서 표현하신 삶과 죽음의 관계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달은 변함없이 떠오르지만, 동시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집니다. 이처럼 우리 삶도 달과 같아서, 결국 끝을 향해 가지만 그 과정 속에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잇몸이 꺼진 달이 몇 걸음 뒤를 따라온다는 표현에서, 죽음이 우리 곁에 항상 함께하고 있음을 시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인님의 작품을 읽으며 느낀 감정들을 다 표현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시인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앞으로도 시인님의 작품을 계속 접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시인님의 아름다운 작품에 감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써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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